목회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저널리즘 토크쇼 J 라이브 방송을 듣는데 정준희 교수가 갑자기 자신은 요즘 이 일(언론 비평)을 계속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언론학자로서 현 시대를 보며 느끼는 분노와 좌절감, 아픔을 고백하는 말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목사로서 그리고 신학도로서 한국 사회와 교회를 보고 있으면 비슷한 질문과 감정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다. 한 사람의 목사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깊은 비애를 느낀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사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목사인 나를 격려하시고 도전하신다. 몇 달 전에 한 부부가 등록을 했다. 남편 분은 오래 전부터 교회생활을 열심히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 동안 교회생활을 하지 않다가 교회 A 자매의 소개로 주일예배에 참석하게 되었고, 아내 분은 전혀 신앙이 없지만 남편이 어디 이상한 이단에 나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 따라 나왔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구분한다. 정확한 회심 없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없이 교회생활을 오래할 수 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신앙생활이란 십자가를 통한 죄의 용서와 중생의 체험(회심의 경험)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단계적/관계적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나누는 과정인 ‘풍삶초’(풍성한 삶으로의 초대)을 몇 달간 씨름을 하며 나누게 되었다. 결과는 두 분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고 삶이 조금씩 하지만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오랜 시간동안 먹었던 알콜과 정신과 약을 끊는 일도 일어났다).
최근엔 삶의 깊은 상처로 알콜에 의존해서 살던 형제님 한 분이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몇 달동안 그 분을 신앙 안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아! 인간은 정말 바뀌지 않는구나”라며 포기하려고 하는 시점에, 그 분이 갑자기 “하나님만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라며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셨다. 아직 완전한 회심을 한 것은 아니며, 곧 풍삶초를 시작하자고 약속을 해 놓은 상태이긴 하지만 그 분의 반응은 나를 놀랍게 만들고 있다.
더 감사한 것은 이런 분들의 변화를 통해서 그 분들의 가까운 지인들이 (가정교회) 목장 모임에 초대가 되고, 신앙생활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하고 있는 요일도 변경해서 주일예배에 참석하겠다는 결단(그전에는 요일 변경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을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까지 한다. 그렇다! 가장 강력한 전도는 복음을 듣고 변화된 삶이다.
목회가 무엇인지, 교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졌는데, 하나님은 자신의 열심과 신실함, 일하심을 통해서 대답하신다. 정직하게 내가 한 것은 별로 없다. 모두 하나님이 하셨다. 내가 무엇인가 했다면 내가 얼마나 훌륭한 목사인지 자랑 하겠지만, 이것은 간증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다. 전부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한 것은 그 분들과 같이 밥을 먹고, 들어주고,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함께 교제하고, 복음을 나누고 설명한 것 뿐이다.
나는 하나님께 교회가 무엇이고, 목회가 무엇이며, 목사로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하나님은 가장 비참하고 깨어진 사람들, 알콜과 정신과 약에 찌든 영혼들, 기존 교회가 품을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 안에 일하시고 계시는 하나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리얼하게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씨를 뿌리고 계신다. 그 씨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너무나 나약하고 미천하게 보이지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뿌려지고 임하고 있다.
목회란 그 뿌려진 씨가 잘 자라도록 돌보는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보잘 것 없지만 작고 미천한 섬김으로 길가 밭이, 돌짝 밭이, 가시떨기 밭이 말씀에 잘 반응하는 좋은 밭이 되도록 계속해서 기경하고 보살피고 모범을 보이고 가르치고 나누고, 함께 주어진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모아서 건물을 짓고, 숫자와 돈을 자랑하고, 그것을 성공한 목사라고 부러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작고 나약하게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