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가 무엇인가요

요즘 고민은 “우리 교인들의 삶의 자리와 어떻게 접목 시킬 것인가”이다. 대부분이 인생의 밑바닥과 아픔을 겪은 분들이고, 이제 막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하신 분들이다. 그러다보니 함께 학습하고-성찰하고-적용하고-토론하는 과정이 쉽지가 않다. 글을 읽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나 어려움을 느끼는 분도 계시고(학력 자체가 매우 낮다), 하루종일 육체 노동에 시달려야 하기에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힘든 분도 계시고, 연세가 칠십이 넘어 이런 과정 자체를 어려워 하는 분도 계신다.
사고하고 성찰하고 토론하는 방식 보다는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주입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신다. 토론을 위해서 질문을 던지면 짧은 대답만 돌아온다. 하면 할수록 내용은 너무 좋은데(나에게만 좋은 것인가?),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에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나만 좋아서 이 내용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깊어진다. 선교단체 출신이고 책을 읽고 공부하고 나누는 것을 너무 좋아하니 나에겐 너무나 일상적인 삶이지만,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그 분들에겐 벅차고 힘든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나 자신이 고학력자이고, 그동안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학력자들이며, 선교단체와 관련되어 만났기에 훈련이라는 것이 일상적인 삶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더불어 대부분이 신앙생활을 오래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 함께 풍삶초와 풍삶첫을 하는 대부분의 분들이 올해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신 분들이다. 어떤 분은 몇 개월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성경도 생소하지만, 논리적인 학습 자체가 생소하신 분들이다. 이런 분들과 한 번 만남을 가지려면 2~3시간 이상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설명 또 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리시고, 그럼 다시 설명하고.
그러나 감사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고, 옛날의 습성이 나타나서 마음이 어려워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길가 같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돌짝 밭의 크고 작은 돌들이 걸러지고 있고, 먼저 뿌려져 자라고 있던 가시떨기가 하나 둘씩 뿌리채 뽑혀지고 있다. 그 과정이 고되고 어렵지만 그래도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변화되는 것이 보인다. 물론 내가 원하는만큼은 아니다. 솔직히 지금도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라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어느 때는 내가 원하던 그림이 아니라 실망감이나 좌절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근데 목회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목회가 아니라 주님이 맡겨주신 것에 순종하는 것, 주님이 가라고 하신 그 길을 오랫동안 걸어가는 것. 그것이 목회가 아닐까? 지금 심는 이 씨가 언제 싹이 날지 알 수 없고, 언제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맺을지 눈 앞에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지만, 주님이 맡겨주신 밭이 이 곳이면 실패해도 계속해서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밭을 기경하는 일들을 멈추지 않는 것이 목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