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말씀 : 창세기 11:1~9
1. 시간 상으로 볼 때 10장에 소개되는 노아의 세 아들에 대한 족보 이야기와 11장에 기록된 바벨탑 사건은 연속적인 관계가 아니다. 어느 시점이라고 정확하게 말할수는 없지만 바벨탑 사건은 족보 이야기 중간쯤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가장 유력한 때는 10:25에 소개되는 벨렉(나뉘다)이다. 에벨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 아들의 이름을 벨렉 – 그의 시대에 세상이 나뉘었다 – 이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 이 본문을 가지고 대륙 이동설을 주장하는 이야기도 들은 기억이 난다(지금 생각하면 참 황당하지만). 그러나 10:25의 내용은 대륙 이동설이 아니라 바벨탑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하고 정당하다. 아무튼 바벨탑 사건은 시간적으로 10장 이후에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여기에는 창세기 저자의 의도가 들어 있다. 다음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지만, 바벨탑 사건 이후에 다시 셈의 족보가 등장하고, 그 족보의 최종 목적지는 아브람이다. 결국 아브람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2. 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서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진 사람들은 도시 문명을 발달 시키며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 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라고 표현한다. 여기엔 지리적인 의미도 있다. 시날 평지 자체가 최초의 인간이 거주했던 에덴 동산이나 혹은 가나안 땅을 기준으로 해서 동쪽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지리적인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최초의 인간이 거주했던 에덴 동산의 입구는 동쪽이다(창 3:24 참조). 나중에 에덴 동산의 모델로 지어진 성전(성막도 마찬가지)의 입구도 동쪽이다(나중 일이지만 가나안 땅도 동쪽으로 들어간다). 또한 불순종한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것도 동쪽이다. 그러므로 점점 동쪽으로 간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그렇게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던 인간들이 시날 평지에 이르자, 거기에 자리를 잡고 벽돌을 구워서 역청을 발라 거대한 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계획은 이러했다(4절).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이 구호를 다시 천천히 읽어보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강력한 도시 문명을 만들어서 흩어지지 말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생육하고 번성함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고 흩어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거대한 도시와 탑을 건축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4장에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등장하는 두 가지 패턴을 그대로 보여준다. ‘불순종’(거역, 반역)과 ‘강력한 도시 문명’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늘,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하며 자신들만의 강력한 도시(강력한 피라밋 시스템)를 만들어 거한다.
4. 그곳에 하나님이 찾아오신다(내려오셨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암행(감찰 따위를 하기 위해 자기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몰래 다님) 하신 것처럼 표현하는 것인데, 인간들이 건축하고 있는 도시와 탑을 두루 살펴 보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살펴봐야 알 수 있는 분은 아니시다. 이것은 감찰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방법일 뿐이다. 그렇게 도시와 탑의 상황을 둘러보신 하나님은 한 가지 결론을 내리신다. 인간의 언어(말)가 하나이기에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런 행동을 막으려면 그들의 언어를 뒤섞어서 흩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대로 행하신다. 그들의 언어를 뒤섞어 혼잡하게 하시고 그들을 온 땅으로 흩어지게 하셨다. 이렇게 인간의 계획 –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과 거역은 다시 실패로 돌아간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속적인 불순종과 거역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