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말씀 : 창세기 11:31~12:9
1. 이제 본격적으로 데라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자신들의 고향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아브람이 아니라 데라이다. 왜냐하면 가족들을 이끌고 고향 우르를 떠난 사람은 아브람이 아니라 데라이기 때문이다(11:31). 당시 여러 가지 환경들을 고려해 본다면 우르를 떠나 미지의 땅 가나안으로 간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러므로 그 결정을 아브람 혼자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아브람이 가족들을 설득했다 할찌라도). 물론 사도행전 7장에 나온 스데반의 설교를 보면 우르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사람은 데라가 아니라 아브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창세기는 조금 다르다. 셈에게서 시작된 족보가 데라에서 멈추고(11:10~26). 다시 데라의 족보가 시작되고(11:27), 가족들을 이끌고 우르를 출발한 사람도 데라로 소개되고 있다(11:31).
2. 자주 이야기하지만 성경은 엄청난 여백이 늘 존재한다. 그 여백을 채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성경을 근거로 해서 상상함으로 그 여백을 채워가야 한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아브람이 분명하다. 창세기 12장부터는 그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명백하게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 출발은 아브람이 아니라 데라이다. 데라도 하나님의 약속(말씀)을 받았는지 그렇지 못한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가족들을 이끌고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했던 무모한 여행의 시작은 데라의 결정이고 순종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여행은 하란에서 멈추게 된다. 왜 하란에서 멈추었는지 이것도 알 수 없다. 본문이 명백하게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것인지 부정적으로 해석할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당시의 환경을 고려한다면 대가족을 이끌고 이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데라의 역할은 그 순종의 시작에 있다.
3. 아버지 데라의 죽음 이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신다(사도행전 7장으로 보면 두 번째이고, 창세기 11~12장으로 보면 첫 번째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내용을 요약하면 세 가지이다. 첫째는 땅이고, 둘째는 자손(민족)이고, 셋째는 복이다. 아브람에게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을 이루고, 그 민족이 가나안 땅에 살게 될 것이고, 그들을 통해 모든 족속에게 복이 흘러가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약속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앞에서 소개된 바벨탑 사건과 연결지어야 한다. 하나였던 언어를 다양하게 나누셔서 민족 단위로 흩어지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런 가운데 셈과 데라의 자손 아브람을 부르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를 통해서 민족을 이루시고, 그 민족을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초점을 놓치면 안 된다. 하나님은 먼저 아브람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그 복을 통해서 민족을 이룰 것이고, 그 민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될 것이다(12:7). 여기서 그 다음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그 민족은 다시 하나님의 복을 유통해서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을 축복해야 한다.
4. 우리는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새롭게 시작하시는 ‘아브라함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것은 변함 없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처음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그곳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두시고, 그들의 생육과 번성, 충만, 정복(개척)하고 다스리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복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땅에 확장되길 원하셨던 것처럼, 한 사람 아브람을 부르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를 통해 민족을 이루고(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지는 과정을 통해), 그들을 통해 온 땅으로 흩어진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길 원하셨던 것이다. 더불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복을 약속하시는 장면은 창세기 1:28을 연상하게 한다. 하나님이 복을 베푸실 때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해서 땅을 정복(개척)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다시 첫 사람 아담에게 주신 그 복을 아브람에게도 베푸셔서 그를 통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해질 뿐 아니라 정복(개척)하고 다스리는 일을 시작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5. 그럼 그 복을 누리고 그 복을 유통하는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성경은 그것을 ‘예배’라고 부른다. 오늘 말씀 7절 이하를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아브람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제물을 드렸다는 것이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분에게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말한다. 예배란 복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대한 반응(송축)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복을 내리신다(blessing). 그리고 아브람은 그 하나님께 반응하여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blessing). 인간은 하나님에게 복을 베풀 수 없다. 복을 베푸시는(blessing)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그 복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송축하는(blessing) 것이다. 그것이 예배이다. 그러므로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