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말씀 : 창세기 12:10~20
1.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인도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데 기근이 들었다. 그것이 그냥 기근이 아니라 심한 기근이다(기억하자! 약속을 받고 왔는데도 기근이 올 수 있다. 그것도 심각한 기근이). 지리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볼 때 가나안 땅은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고, 그때 맞추어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는 특성을 갖는다. 거기에 맞추어 파종을 하고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변화로 인해 그 시가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 해 농사는 포기해야 한다. 아마 가나안 땅에 심각한 기근이 찾아온 것 같다.
2.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항상 흐르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던 아브람이 물이라곤 우물과 우기에 내리는 비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장기적인 기근을 만나니 더욱 난감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아브람의 선택은 365일 마르지 않는 나일강이 흐르는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기근을 피해 잠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체류를 목적으로 가나안 땅을 떠나 이집트로 내려갔다.
3. 이때 아브람에게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아내 사래의 외모 때문이었다. 사래의 외모가 너무 이뻐서 이집트로 내려가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근심이 있었다(자신을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 것이라는). 아마 아브람이 비슷한 경험들을 여러 번 했을지도 모른다. 고향 떠나 무법지대와 같은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는 시간들 중에서 그런 경험들이 아브람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고, 다시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이집트로 내려가는 과정 중에 그 트라우마가 작동했을 것이다.
4. 아브람은 한 가지 잔꾀를 부린다. 사래가 아내라는 것은 감추고, 자신의 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아브람은 이것을 통해 스스로 합리화를 시도한다. 그래도 반은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자신의 생명도 유지할 수 있고,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는 땅에서 대접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비춰진 아브람의 모습은 너무도 이기적이다.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다. 사래의 반응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어쩌면 이런 상황들이 사래에게 익숙했는지도 모른다.
5. 이집트에 도착하자 아브람의 걱정이 현실이 되어 버린다. 사래의 외모가 너무 뛰어나 바로의 신하들에 눈에 들어왔고, 그 소문이 바로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65세가 넘은 여인의 외모가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났을까?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미의 기준은 시대와 문화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미의 기준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름답다’라는 평가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오늘날 우리의 기준으로 이 부분을 쉽게 평가하면 안 된다. 아무튼 사래의 미모가 상당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6. 당시 아브람은 뛰어난 생존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사래가 자신의 아내라는 것을 감추고 누이라는 사실만 밝혀서 바로에게 신부의 몸값으로 큰 재산을 받고(그의 예측대로 후한 대접을 받는다), 사래는 바로의 부인이 된다. 이때 하나님은 그 상황 가운데 개입하신다. 하나님이 개입하신 이유는 하나이다.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 사이에서 나온 자손을 통해서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지금 그 약속이 깨어질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 이유는 전적으로 아브람의 불순종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상황 가운데 개입하셔서 그 약속이 깨어지지 않도록 일하신다.
7. 바로이 집안에 어떤 재앙들이 내려졌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재앙들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어쩌면 바로는 억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 아브람이 처음부터 자신의 누이라고만 밝혔기에 아내로 삼은 것인데, 그것 때문에 자신의 집안에 재앙들이 일어났으니 억울하고 거짓말을 한 아브람에게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는 아브람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에게 준 재산도 빼앗지도 않는다. 이집트 밖으로 추방만 시킨다.
8. 아브람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예측대로 상황들이 돌아갔다. 척박한 자연 환경과 험악한 상황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런 면에서 아브람은 눈치가 빨랐고 상황을 분석하고 대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말미암아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눈 앞에 벌어졌다. 아내도 다시 찾게 되었지만, 이집트로 내려올 때보다 더 많은 재산을 얻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그의 속임수로 얻게 된 재산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위험한 상황과 불신앙을 뒤집어서 안전과 재물과 가정을 아브람에게 안겨주신다.
9. 아브람의 예측, 판단력, 눈치, 계획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정확하게 상황을 분석했고, 일어난 일들을 예측했고, 준비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한 가지 아브람의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 분의 약속과 능력이다. 아브람은 상황을 분석하고 평가할 때 하나님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경험과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예측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일하고 있다. 내가 약속한 것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