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말씀 : 창세기 15:1~21
1. 롯을 구출하고,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한 후에 여호와 하나님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세 가지를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상급)이 크다.” 동쪽 연합군을 기습작전으로 격퇴하긴 했지만 당시의 지리적, 정치적 환경이나 아브람의 처지를 보면 매우 불안정한 상황 가운데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자신이 아브람의 방패(보호의 의미)가 되어주실 것이며, 하나님이 직접 아브람에게 보상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분명히 소돔왕의 제안을 거절한 것에 대한 말씀이다.
2. 하지만 아브람은 그런 하나님의 약속이 공허하게 들린다. 그 이유는 아브람 자신에게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살던 시대의 세계관으로 볼 때 자식이 없다는 것은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나 말씀이 아브람에게 매우 공허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놀라운 약속을 하시고, 커다란 보상을 말씀하신다고 해도 아브람에게 그것을 물려줄자식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답답했던지 아브람은 하나님께 직접 자식의 문제에 대해서 간구/제안을 한다. 자신의 충성스러운 종 엘리에셀을 아들로 입양해서 상속권을 그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3. 그런 아브람의 제안에 하나님의 반응은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여주시며, 아브람의 자손들이 이 별들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13장에서 자손에 대한 약속을 하실 때는 땅의 먼지로 비유하셨고(13:16), 15장에서는 하늘의 별로 비유하시며 그 숫자가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 말씀/약속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이 15:6에 나와 있는데, 이 구절은 신약(로마서 4:1~3, 갈 3:6~14)에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교리의 근거가 되는 구절로 유명하다. 핵심은 별을 보여주시며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람이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이다.
4. 여기서 우리는 문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자주하는 실수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본문에서 6절만 빼서 한 가지 의미만 강조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어지는 사건들/이야기들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7절 이하의 사건은 하나님과 아브람이 언약식을 체결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초점은 자손에게서 땅으로 옮겨간다. 7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지금 그가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다시 약속하신다. 아브람도 더 이상 자손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 않는다. 아마 별을 보여주시며 약속하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냐고 묻는다(8절).
5. 그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당시 사람들이 언약하는 방식을 따라 언약식을 체결할 것을 제안하신다. 방법은 제사와 다르다. 제사는 수컷을 바치지만, 이 언약식에는 암컷을 잡는다. 또한 제사에는 제물을 여러 부위로 각을 뜨고 제단에서 불사르지만, 이 언약식에는 가운데을 반으로 쪼개어 땅 위에 놓는다. 그리곤 언약/계약하는 두 사람이 그 제물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의미는 이 계약/언약을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이 짐승들처럼 쪼개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아브람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희생제물을 준비해 놓고 하나님을 기다린다. 하나님과 함께 그 제물 사이를 지나가야 계약/언약이 성사되기 때문이다.
6. 12절을 보면 해가 질 무렵에 아브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곳 가운데 임재하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들려왔다. 그 내용은 아브람의 자손들이 겪어야할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브람의 자손들이 다른 나라(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살다가 종이 되어서 사백 년 동안 고통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이 그 나라를 벌하시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인데, 그것은 이 땅에 살고 있던 이방 족속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약속이다.
7. 그런 다음 희생제물 사이를 연기 나는 화덕과 타오는 횃불이 지나가며 그 제물들을 삽시간에 불살랐다. 18절에는 이것을 “주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셨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계약/언약의 체결은 쌍방적인 것인데 – 두 사람이 함께 쪼개진 제물 사이를 지나가야 한다 –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불기둥(연기와 횃불)만 지나가며 제물을 불태웠다는 것은 그 언약을 세우시고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 언약에서 아브람의 역할은 ‘믿는 것’ 외에는 없다. 그 언약의 내용을 결정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놀라운 것은 그런 하나님이 인간을 동등한 계약의 당사자로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뜻과 계획을 설명하시고 예고하시며, 그 일의 동반자로 부르신다는 것이다.
8. 하지만 믿음이란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성경에서 특히 구약에서 믿음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믿음이 언약이라는 특수한 상황 안에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언약은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관계는 쌍방적이며 동시에 일방적이다. 언약의 내용을 결정하고 이행한다는 면에서는 일방적이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결정하시고 이루어 가신다. 하지만 언약을 체결하는 자의 반응도 중요하다. 성경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언약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반응을 의미한다. 자주 말하지만 어떤 지식적인 확신이나 신념 따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며 동시에 순종을 말한다.
9. 구약은 믿음을 이야기할 때 삶이라는 현장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삶과 분리 시켜 놓은 교리만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믿음의 교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이다. 그것도 역사라는 도도한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시기 위해 일하시는 – 언약을 세우고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믿음이라는 것을 묘사하고 설명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배경은 다 지워버리고 교리로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믿음의 역동성은 죽어 버리고 믿음이 지적인 신념이나 광신적인 확신 따위로 전락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