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말씀 : 창세기 17:1~27
1. 아브람의 나이 99세에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오셔서 다시 한번 언약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이스마엘을 낳은지 13년이 흐른 뒤이다. 여러 설교자는 이 부분을 부정적으로 설교를 한다. 13년 동안이나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지 않으신 것은 그의 불순종 –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기 –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16장이나 17장 어디에도 그렇게 해석할만한 근거는 없다. 16장을 보면 사래에게서 도망친 하갈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오히려 그에게 큰 복을 약속하신다. 물론 그 내용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하갈이나 이스마엘을 부정하거나 저주하신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18절을 보면 아브람은 자신의 상속자로 이스마엘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이어서 20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마엘에게 복을 줄 것이며, 그 자손을 크게 부렁나게 할 것이라고, 그에게서 열두 명의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실 정도다.
2. 16장과 17장 사이에 13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람의 반응이 아니다. 그가 불순종 했다고 하나님이 13년이나 침묵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 옹졸하게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때/시간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다 되었기에 그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설명하시고 그것이 대대로 이어질 언약의 징표가 되기 위해서 할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러니 이 13년간의 침묵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말자. 앞에서 이미 설명했지만 이스마엘의 후손이 무슬림도 아니며, 아브람의 불순종이 하나님이 침묵하실 수 밖에 없는 이유로 설명하는 것도 합당하지 않은 것 같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람의 가정 안에 커다란 불화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본문의 초점이 그런 윤리적인 주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3. 17장의 핵심 주제는 ‘언약’이다. 아브람이나 사래의 이름이 새롭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할례도 아니다. 이름을 개명하거나 할례 사건이 강렬하게 다가오기에 그렇게 보이지만, 두 사건은 모두 언약이라는 주제 아래 놓여 있는 사건들이다. 하나님은 지금 아브람과 언약을 확고하게 다시 세우시길 원하신다. 그런데 이 언약은 지금 갑자기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미 12장에서부터 언약에 대해서 말씀/약속 하셨고, 그것을 하나씩/조금씩 확대해 가시면서 이루어 가신다. 다시 말하면 아브람이라는 사람의 역사 안에서 하나씩 성취해 가신다. 우르와 하란 땅에서 아브람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자손과 땅에 대한 약속을 여러 차례 확인하시며, 제물 사이를 지나가심으로 언약을 체결하실 뿐만 아니라, 그 언약을 확실하게 이루어 가시기 위해 17장에 와서는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개명해 주시고, 언약의 상징으로 할례를 행할 것을 명하시고 계신 것이다.
4. 구약성경에서 이름이란 그 이름을 사용하는 존재의 가치와 의미, 목적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그 삶의 가치와 목적, 내용이 새롭게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곧 아브람의 가정에 새로운 일을 이루실 것이다. 그 일을 시작하기 직전에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여러 민족의 아버지)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여러 민족의 어머니)라고 개명케 하신다. 이것은 그 일을 이제 두 사람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실행하시겠다는 것이다. 이어서 하나님은 할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신다. 이것은 남자의 성기의 표피를 자르는 의식으로, 남자들의 몸에 언약에 대한 상징을 남김으로서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즉 할례 자체가 어떤 신령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할례를 행함으로서 언약 백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매 있는 것은 이것이 나중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음으로 체결하는 언약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5. 이 언약은 항상 쌍방적이다. 지금은 아브람이 언약의 대표자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지만, 앞으로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태어날 자손들이 그 언약의 대상자가 되어 언약을 이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또한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은 할례를 통해서 그 언약 안에 들어오지만, 그들이 해야할 일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섬기고 따르고 지키는 것이다. 만약 할례를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언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무거운 심판과 그에 대한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언약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심판의 근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