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말씀 : 창세기 21:1~21
1. 드디어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에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임신과 출산을 통해 아들을 얻은 것이다. 오늘 말씀은 그것을 “여호와께서… 돌보셨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단어는 ‘방문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1년 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대로 하나님의 방문으로 노년의 사라가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또 바로 앞에 나온 이야기와 묘하게 연결되는데, 소돔의 방문은 그 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죄악들의 현실태를 감찰하고, 그 죄에 대한 심판을 실행하기 위한 방문이었다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을 방문하신 것은 언약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달리 말하면 아브라함의 가정에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2. 아브라함 가정에 하나님이 방문하시자(돌보시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임신할 수 없는 사라가 임신한 것이고, 건강한 아들을 출산한 것이다. 오늘 말씀은 이삭이 태어날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백 세였다고 밝힌다. 더군다나 사라는 이미 페경이 되어 인간적으로는 임신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가정을 방문하시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앞선 방문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대해서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허탈한 웃음을, 사라는 냉소적인 웃음으로 반응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하나님의 방문으로 진짜 임신과 출산이 이루어지고 건강한 아들을 품에 안게 되자 기쁨과 감격의 웃음을 짓게 되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방문, 하나님의 돌보심은 이삭이라는 이름 그대로 아브라함과 사라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의 웃음을 선물해 주었다.
3. 하지만 이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큰 잔치를 베풀어 다시 한번 웃음과 기쁨을 확인했지만, 늘 시한폭탄처럼 내제되어 있던 문제가 다시 폭발하고 말았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행위(무시하고 희롱하는 행위)를 사라가 목격하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그 모자를 내쫓으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놓고 크 근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요구대로 하라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의 대를 이를 자식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임을 다시 한번 말씀하시고, 대신 이스마엘도 복을 주어서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하갈이나 이스마엘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그에게 복을 주시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들의 호소와 간구를 들으셔서 살 길을 열어주시고 인도해 주신다.
4. 14절 이하가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광야를 헤매던 모자는 물이 떨어진 상황 속에서 어찌할바를 모르고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간절히 호소하고 간구한다. 놀랍게도 하나님이 그 모자의 간구와 호소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샘물을 발견케 하시고 새로운 살 길로 인도하여 주신다. 그래서 그들은 바란 광야에 거주하며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가운데 이루어졌음을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밝힌다. 하나님은 그들을 박대하시거나 외면하시지 않으신다. 비록 약속의 자녀는 아니지만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갈이나 이스마엘을 너무 부정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이것도 우리의 잘못된 선입관이다. 하나님은 소외된 자들의 작은 간구와 기도까지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