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한 말씀 : 창세기 27:30~40
1. 어머니 리브가와 둘째 아들 야곱이 합작하여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장자가 받아야 하는 축복 기도를 대신 받았다. 그 기도가 끝나고 야곱이 이삭 앞에서 나가자마자 곧 큰 아들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와서 아버지 이삭이 부탁한 별미를 만든다. 아직 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에서는 큰 기대와 기쁨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만든 별미를 가지고 이삭 앞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곧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된다.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동생 야곱이 자신을 대신해서 축복기도를 받은 것이다. 이때 가장 당황스럽고 충격을 받은 사람은 이삭이었을 것이다(“심히 크게 떨며” 33절). 장자인줄 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빌어주었는데, 그 기도를 받은 사람이 장남 에서가 아니라 차남 야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삭은 이렇게도 당황해 하고 충격을 받았을까? 그것은 그 축복이 철회되거나 취소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3절을 보면 이삭은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록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탈취한 축복이지만 그것이 취소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2. 이런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는 에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는 소리를 지르며 슬피 울었다. 이것은 에서가 매우 격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 슬픔이란 감정은 상실에서 오는 것이다. 지금 에서는 자신이 받아야 하는 복을 야곱이 가로챘고, 그 축복이 번복되거나 취소될 수 없음을 확인하곤 큰 상실감을 느꼈다. 이 감정은 곧 분노로 바뀐다. 동생 야곱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자신의 장자권과 복을 빼앗아 가려고 시도했는지를 말하는 대목에서 에서의 분노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에서는 계속해서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을 요청한다. 우리는 여기서 장자권과 그 장자가 받을 복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장자권은 집안의 유산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며, 장자가 누리게 되는 복이란 그 권리를 통해 누리게 되는 모든 결과와 혜택을 말한다. 이것은 오직 장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고 혜택이며 복이었다.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었으며, 설사 형제 사이에 거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의 최종적인 축복이 필요했다. 마치 계약서에 최종적인 싸인을 하거나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3. 에서가 집요하게 아버지 이삭에게 남은 축복이 없냐고 물으며 자신에게도 축복을 해 달라고 요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에서를 위해서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족장과 가장으로서 축복권을 가진 이삭이 모든 것을 야곱에게 주었다. 야곱은 에서의 주인이 될 것이고, 야곱의 형제들은 종이 될 것이다. 심지어 곡식과 포도주의 축복까지 모두 야곱에게 부어주었다. 이렇게 이삭은 모든 축복을 야곱에게 부어주었고, 에서를 위한 것은 없었다. 이런 아버지의 말에 에서는 절박함과 절망감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절망감은 더 큰 분노로 바뀌어 야곱에게 향할 것이다. 또한 아버지에게 무슨 축복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이삭에게 축복해 달라고 요청하며 매달린다. 이때 이삭은 에서의 미래에 대해서 예언적인 선포를 한다. 에서와 그의 자손들은 칼에 의지해서 살 것이고, 야곱의 후손을 섬길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축복이 아니다. 에서와 그의 후손들의 운명에 대한 예언적인 메시지이다.
4. 구약의 역사를 보면 이 예언적 메시지가 두 사람의 후손들을 통해서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에 의해서 다윗 시대에 정복되어 그들을 섬기게 된다. 하지만 구약의 역사를 보면 이 두 민족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다. 지속적인 갈등과 대립, 전쟁이 지속되었다. 그럼 이런 결과를 가지고 온 것이 야곱 때문일까? 에서 때문일까? 한 가정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갈등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정당한 방법이 아닌 거짓과 속임수로 받은 축복은 유효한가? 누구에게는 축복이 되었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저주가 되어 형제간의 갈등을 뛰어넘어 민족간의 갈등으로 확대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계속 이야기하지만, 성경은 철저하게 인간의 현실을 다룬다. 환타지 소설도 아니며 좋은 이야기만 모아놓은 책도 아니다. 성경은 아주 철저하게 이 땅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너머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룬다.
5. 야곱이 에서보다 윤리적으로 더 나은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에서의 연약함과 부족함도 보인다. 그는 분명 하나님의 언약이나 장자권에 대해서 소홀히 여겼다. 반면 야곱은 경쟁심이 강했고 비열한 방법으로 그 축복을 훔쳤다. 성경은 그런 야곱을 절대 두둔하지 않는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는 식의 사고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하나님의 다루심과 인도하심이 있다. 부르신 자들을 만지시고 실패와 좌절,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그 부르신 자를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은헤와 사랑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창세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언약’을 놓치면 안 된다. 우리는 집요하게 하나님의 언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언약하시고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그런데 그 언약은 깨어지고 망가진 세상 속에서, 인간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언약이 성취되는 공간은 아무런 균도 없는 무균실이 아니다. 술수와 배신과 미움과 저주와 죽음이 난무하는 깨어진 세상 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