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8일 주일예배 설교문
- 말씀 : 마가복음 1:1~15
- 제목 : “복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설교 : 이상준 목사(복음자리교회)
- 3월과 4월달은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특히 크게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나눌 것인데 하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십자가’에 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의 구조 자체가 전반부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후반부는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서 다루면서 예수님의 생애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다시 합쳐서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혹은 ‘왕의 복음’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가 있는 것은 교회력(교회달력)으로 보면 4월달에는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이 있습니다. 이런 기간에 우리는 다시 예수님과 그 분의 생애를 통해서 이루신 복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살펴보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 먼저 마가복음 1:1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가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 시작은 이러하다’ 우리는 먼저 두 개씩 연결되어 있는 두 단어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단어들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들입니다. 물론 이것들과 연결되어 있는 ‘복음’이라는 단어도 살펴볼 것인데, 먼저 ‘하나님의 아들’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이 단어들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우리는 구약의 배경을 알아야 하고, 당시 시대적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의미는 구약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는 ’저희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며,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족’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크리스토스’라고 읽는데,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는 단어입니다. 이 메시아라는 단어의 의미는 ‘언젠가 오셔서 이 땅을 다스리고 이스라엘을 모든 압제자와 고통에서 건져 줄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예언자들(선지자들)을 통해서 이 사실을 계속 약속 하셨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아가 하루 속히 오시기를 학수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두 번째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단어들인데, 마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재미 있는 것은 1절 외에는 세 번(3:11, 5:7, 15:39)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는데 두 번은 귀신에 의해서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은 로마 백부장에 의해서입니다. 신기한 것은 제자들에 의해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불러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은 시작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해 버립니다. 이것은 상당히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용어의 사용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 황제만이 신의 아들(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려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은 당시 로마의 정체제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로마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왕정(왕이 다스리는 나라)으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공화정으로 바뀌게 됩니다. 여기서 공화정이란 왕이 아닌 여러 도시의 대표자들이 함께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치 제도를 말합니다. 그것을 대표하는 기관이 ‘원로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를 넘어 지중해 전역으로 나라가 커지자 광화정에서 로마 제국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1인 독재 즉 황제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초대 황제로 등극한 사람이 유명한 ‘아우구스투스’(정식 이름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이고,, 황제의 정통성과 권위를 세우기 위해 황제에게 신의 아들, 혹은 주님, 구원자, 전능자와 같은 용어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마가복음은 이것을 거부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담대하게 선언해 버립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통해 복음(기쁜 소식)이 시작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복음’을 종교적인 용어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이 기록된 시대엔 황제가 통치하였고, 그 황제와 관련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을 ‘복음’(기쁜 소식, 유앙겔리온)이라고 했으므로 다분히 정치적인 용어였습니다.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고대 로마 시대에는 전쟁에 승리했을 때 그 전령(케룩스)이 전해주는 ‘승리의 소식’을 ‘유앙겔리온’(복음, 기쁜 소식)이라고 불렀습니다. 특히 황제와 관련되어 전해지는 모든 좋은 소식을 ‘유앙겔리온’이라고 불렀습니다. 예를 든다면 황제의 생일, 출생, 즉위식, 정치적/군사적 승전보 등이 ‘유앙겔리온’입니다. 이런 날은 축제일로 지켰는데, 전령이 말을 타고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여기에 유앙겔리온이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그 기쁜 소식을 알렸고, 그 전령이 전하는 내용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불렀습니다. 마가복음은 그 복음(유앙겔리온)이란 용어를 예수님께 사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표현은 두 가지 번역이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혹은 가르친 복음”으로도 번역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으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1절은 이런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 복음이 시작되었고, 예수님이 그 복음을 공생애를 통해 직접 가르치시고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4~15절이 그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1절은 마가복음 전체의 제목(표제, Title)이라면 15절은 마가복음 전체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가복음의 핵심 구절이 15절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차이점은 1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되어 있고 14절은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두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고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1절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고 전해진 복음을 강조하고 있다면, 14절은 그 복음을 계획하고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구약으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복음을 전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에서부터 준비되고 진행된 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복음을 계획하시고 진행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하나님의 뜻(계획)과 시간표에 맞추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그 복음을 선포하셨고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은 복음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이것을 제대로 다루려면 상당히 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오늘은 짧게 한 가지만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 그림 하나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구약의 종말론’(혹은 유대인의 종말론)이라고 합니다. 핵심은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메시아가 왕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완전히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방인의 압제와 통치에서 유대인들을 구원할 것이고, 자연 만물까지도 온전히 회복되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서를 읽어보면 많은 예언자들(선지자들)이 바로 그 메시아의 오심을 약속하고 있고, 그런 날을 ‘주의 날’, ‘마지막 날’, ‘종말’, ‘여호와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더불어 그런 메시아의 오심을 선포하는 것을 ‘기쁜 소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성경구절 몇 군데를 찾아서 읽어볼까요? 먼저 이사야 40:9~10을, 그 다음은 이사야 52:7을 함께 읽어볼까요!9 좋은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어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거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힘껏 높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여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계신다” 하고 말하여라.
10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오신다. 그가 권세를 잡고 친히 다스리실 것이다. 보아라, 그가 백성에게 주실 상급을 가지고 오신다. 백성에게 주실 보상을 가지고 오신다. 7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구나. - 좋은 소식, 아름다운 소식, 희소식, 모두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다시 오시는데, 왕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오셔서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그런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가져오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사야서를 읽어보면 그 메시아가 오셔서 하시는 일을 여러 가지로 소개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와 ‘하나님의 구원(치유와 회복까지 포함해서)을 실현하는 메시아’입니다. 고난 받은 종으로서의 메시아는 이사야 53장에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구원을 실현하는 메시아는 이사야 6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난 받은 종으로서의 메시아에 대한 내용은 4월 달에 가서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대신 하나님의 구원을 이 땅에 실현하는 메시아에 대한 성경구절을 같이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너무 자주 언급해서 많이 읽어보았을 것입니다. 이사야 61:1~3을 함께 읽겠습니다.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2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3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르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삼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곳이 누가복음 4:18~19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회당에서 첫 번째 설교를 하셨는데, 그 때 읽은 말씀이 이사야 61장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메시아가 오시면 메시아를 통해서 성취될 내용에 대한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읽으시고 이 메시아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심으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이것을 마가복음에서는 한 단어로 ‘복음’이라고 칭합니다. 그 복음의 핵심은 내용은 하나님이 메시아를 통해서 이 땅에 베푸실 구원과 치유와 회복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15절을 보십시오. 마가복음에서는 메시아를 통해서 성취될 구원과 회복과 치유를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황제가 왕이 되어 다스리는 왕국(로마 제국과 같은)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왕국(‘나라’라는 표현보다 ‘왕국’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이 시작되었고 도래하고 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사실 학자들 사이엔 이 표현에 때문에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는 문장에서 ‘가까이 왔다’ 라는 말은 헬라어 ‘엥기켄’ 입니다. 이것이 이미 ‘도착’한 것을 의미 하느냐, ‘아주 가까이 왔음’을 의미 하느냐의 논쟁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모두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통해서 이미 도착했으며,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현재적 하나님의 나라). 하지만 아직 완전히 온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올 것입니다(미래적/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 우리는 그것을 ‘이미’(already)아 ‘아직’(not yet)이라는 갈등 구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시작된 나라와 아직 완전히 완성되지 않은 나라가 서로 공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음의 그림이 잘 보여줍니다.
- 구약에서는 메시아가 오시면 그때가 종말이고 이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 – 하나님이 온전히 통치하시는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을 통해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록해서 당시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었습니다. 큰 차이점은 메시아가 한번 오시는 것이 아니라 두번 오십니다. 우리는 메시아의 첫 번째 오심을 초림이라고 부르고, 메시아가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을 재림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면,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은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것을 구분하지 못한 이유는 초림과 재림이 겹쳐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으로 보면 예수님의 초림에 일어날 사건과 재림에 일어날 사건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어느 때는 초림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어느 때는 재림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다 겹쳐 있고, 그래서 다 한번에 일어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역사 안에서 펼쳐지고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실체는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정치적인 국가의 회복도 아니었고, 단번에 이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새롭게 열리는 것도 아니었으며, 나중에 다루겠지만 메시아가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왕으로 오시는 분이시기에 모든 원수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다윗을 통해서 잠시 볼 수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찬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에 거룩하고 그리고 영원히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하자면, 첫째로 예수님 자신이 복음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기억하세요. 복음은 어떤 교리 체계나 성경을 요약해 놓은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복음입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곧 왕으로 이 땅에 오셨기에, 어떤 눈에 보이는 정치 체계나 조직이나 단체, 혹은 특정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이십니다. 이것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마가복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가복음을 읽으시기를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이시기 때문에,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예수님의 삶과 함께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이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 자체가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 세례자 요한이 등장하고, 그 세례자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을 임하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다시 한번 예수님의 정체를 확인 시켜 주시고(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사십 일동안 시험을 받으시고,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심으로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생애 자체가 복음이고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공생애의 시작이 복음의 시작이고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다음 특징과 연결되는데, 셋째로 복음이자 하나님의 나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실현되고 있고 성취되고 있다면,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결단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나고 성취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 이것을 결정하는 문제로 확장이 됩니다.
- 그래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두 가지 반응입니다. 회개하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단어도 종교적으로만 이해합니다(우린 너무 종교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두 단어도 종교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회개란 가던 길을 돌이키는 것, 방향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 – 자신이 왕이 되어 자신의 뜻과 욕심대로 살아오던 삶에서 완전히 돌이켜서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고, 이미 도래했습니다(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왕(하나님의 아들)이 오셨고, 그 왕이 왕으로서의 공적 사역이 시작하셨습니다(9~13절). 그러므로 그 나라의 백성, 그 왕의 통치를 받기 위해선 회개 – 삶의 완전한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런 전환이 없이는 왕의 통치를 받을 수 없고, 그 왕을 따르는 그 분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 그 다음은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단순한 동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복음이란 왕에 대한 기쁜 소식입니다. 소식은 기본적으로 수용과 확신, 신뢰를 전제로 합니다. 특히 신뢰라는 의미가 기쁜 소식과 잘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어떤 지식이나 그 지식에 대한 지적인 동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신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그 사건이 나의 사건이 됩니다. 메시아를 통해서 시작되고 성취되는 사건이 나의 삶에도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한 개인의 삶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지만 한 개인의 삶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저 한 사람을 구원해서 천국에 데려가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대인의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너무 정치적으로만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너무 개인적이고 내면적으로만 해석했습니다. 둘 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 구약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우주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은 하나님이 반드시 창조 세계 전체를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사람을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동일하게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발견하고 깨달은 한 사람을 통해서 전수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돌이키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안에서 이루어진 복음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진짜 믿는다면 삶의 변화와 행동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속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그 복음이 진짜이며 실체이고, 내가 그것을 진정으로 신뢰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곳곳에는 이 부분에 대해서 계속해서 도전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시간을 내어서 마가복음을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진짜 회개하고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마가복음을 통해서 새롭게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그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