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성경을 공부하며 드는 생각]
어릴 때부터 배운 것은 ‘기계적 영감설’이다. 성경의 저자는 그냥 인간 타자기가 되어 주님이 불러주신 것을 그냥 기계적으로 받아 적기만 했다는 것이다.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성경은 매우 다양한 실로 짜여진 옷과 같음을 알게 된다. 또한 영감이라는 것이 어릴적 배운 것처럼 그렇게 기계적으로 작동한 것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그렇게 이해하도록 강요를 당했고, 그렇게 읽어내는 기계적인 설교를 들으며 자랐으며, 목사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생각하게 했다. 10년 신학공부를 하고, 목회자이며 신학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목사가 된지도 적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 가운데 요즘 내리는 몇 가지 결론이 있다.
첫째, 설교는 절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설교는 가능하다면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내어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수사학적 강의보다는 본문의 내용을 충실하게 해석하고 전달하는 강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우리는 이미 그리스 철학으로 무장된 수사학적 설교에 길들여져 있다).
둘째, 성경의 영감은 기계론적으로 작동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개입하시고 말씀하시며 이끄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적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신적인 요소와 인간적인 요소가 서로 충돌하지 않으며, 어떤 한쪽을 배제하지 않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성경은 다양한 실로 짠 옷과 같다. 그런데 완성된 옷을 보니 재료로 사용된 실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구분하기 어렵다.
셋째, 단순한 사회에서는 진리를 단순하게 전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매우 복잡한 시대이다. 복잡한 상회 속에서 진리를 단순하게 전하는 것이 힘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너무 단순한 진리는 그만큼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단순함이 진리를 날카롭게 하지만, 어느 때는 그 날카로움이 어떤 사람들을 상처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넷째, 성경은 한 명의 설교자나 소수의 목회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그것을 해석할 권한이 그들에게만 주어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부분을 성도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여전히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경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알지 못하며, 여전히 지식적 동의(소위 믿음이라고 불리는)만을 강요받고 있다.
다섯째, 수 십 명이 모이든, 수 천 명 혹은 수 만 명이 모이든 소수의 설교자가 일방적으로 전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소비해 내는 이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설교자가 살고 교회도 살 수 있다.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 있는 것이지, 소수의 목회자가 그들이 만든 어떤 시스템이나 조직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결론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 나라의 백성들 사이에서 역사하시도록 새로운 문을 열어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권위와 능력은 말씀 그 자체에 있는 것이지 인간이나 그 인간이 만든 조직이나 어떤 교리 체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