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정체성

이천년대 초 동두천에서 사역할 때 오렌지애드를 처음 알았으니 꽤 오래 되었고, 지역구가 아닌 전국구의 회사인데, 그런 회사가 문을 닫았다.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실 교회들은 더 어렵다. 개인적으로도 매일 고민한다. 얼머나 ‘존버’ 할 수 있을지. 그런데 그나마 우리는 버틸 수 있었던 것이 ‘가정교회’ 였기 때문이다. 건물을 유지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기존의 작은 교회들은 매달 감당해야 하는 재정들이 정해져 있다. 어떤 이는 대출을 받아서, 어떤 이는 사모의 희생으로, 어떤 이는 이중직의 방법으로 그것을 해결하면서 지금까지 버티고 버티었다. 하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최근에 어느 교수님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교회들이 ‘생존한다’, ‘버틴다’라는 표현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기존 기업 생태계와 동일한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생존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 속으로 반성이 많이 되었다. 우리가 교회를 마치 기업처럼, 동네 가게처럼 운영하고 유지했는데, 갑자기 여러 가지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런 기업들이 위기를 겪는 것처럼, 교회들도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동안 우리가 만들어 놓은 교회 생태계가 너무 친 기업적이었다. 세상의 기업 경영의 원칙들이 교회 곳곳에 들어왔고, 복음과 진리, 하나님을 마케팅의 방법으로 소개하고 팔았다. 한 동안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장사가 그런대로 잘 되었다. 그런데 그 생태계가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갑자기 바뀌었다. 그 결과는 ‘줄- 부도’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젠 코로나로 (일시적인) 예배당 폐쇄만이 아니라 영구적인 폐쇄가 곳곳에서 일어나도 전혀 이상한 상황이 아니다.
그럼 생존말고 무엇을 해야할까? 종교를 넘어 하나님을 신앙하는 공동체로서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조직으로서의 교단이나 지역교회(local-church)는 문을 닫을 수도 있다. 그것을 가지고 너무 크게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진짜 교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유기적인 공동체인 교회는 문을 닫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계절이 달라지면 그에 맞는 옷을 갈아 입어야 하는 것처럼, 시대가 변화되고 있으니 거기에 적합한 옷을 입으면 된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누구냐?” 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교회를 무엇이라고 인식하고 하고 있을까? 그냥 눈에 보이는 건물이 전부일까? 그 안에 있는 어떤 조직이나 단체일까? 우리의 사명이 그저 눈에 보이는 건물을 유지하고 사람들을 우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오늘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목사로서 나는 누구이고, 교회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