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宿命) – ‘글쓰는 그리스도인’을 읽고
검은 책을 잡아들고 제목을 보았다. ‘글쓰는 그리스도인’이다. 왜 하필 글쓰는 그리스도인일까? 물론 책의 내용이 글쓰기에 대한 것이니까 그럴 수 있지만, 거기에 왜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일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글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거꾸로 생각한다면 그리스도인에게 글쓰기란 어떤 것일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글쓰기를 생각해 보면 교회에서든지 학교에서든지 체계적으로 배운 기억이 전무하다. 교회에서는 항상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만 강조했다. 근데 그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고, 어떻게 묵상하고 공부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반대로 그 책이 어떤 기록의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지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릴 때를 생각하면 성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다.
기독교를 일반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표현하자면, 기독교는 ‘한 책의 종교’이다. 책이란 누군가의 기록의 산물이다. 성경은 그 기록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영감’이라는 특별한 섭리가 작용되었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신령한 영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성경을 읽었는데 이해가 되지 않거나,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적인 문제라고 판단을 해 버린다. 하지만 짧은 목회의 경험으로 한 마디를 하자면, 그것은 영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대부분 국어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아서, 성령 충만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성경을 바르게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잠시 학교 국어시간으로 돌아가 보면, 내가 배운 국어는 숙제를 위한 것이었고, 시험을 위한 것이었다. 글을 쓰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서 배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분석하고 평가해 놓은 것을 달달 외우고 익혀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함이었다. 대학교에서도 글쓰기에 대한 수업은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레포트’라는 것을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일명 ‘복-붙’(Ctrl+C – Ctrl+V)이었다. 한 번은 큰 용기를 내서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반박하는 레포트를 제출했는데, 그 수업의 성적은 영광스러운 ‘D’였다. 그 이후로 그냥 ‘복-붙’이 살 길임을 깨달았다.
대학원에 가서는 논문이라는 것을 작성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대학원 논문이라는 것이 학문성 보다는 졸업을 위한 과정이었기에, 그 논문들도 대부분 ‘복-붙’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도서관에 가서 해당 주제와 관련된 논문들, 그리고 그 논문에 나온 목차와 참고문헌 리스트만 있으면 얼추 논문의 방향을 잡아서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지만) 졸업을 위한 논문을 작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지만 해내야 하는 과제였고 숙제였다. 그러다보니 읽기는 더 엉망이었다. 글쓰기라는 산고를 거쳐서 나온 글을 제대로 읽어내야 하는데, 글쓰기가 안 되니 읽기는 더욱 안 되었다.
정리하자면 국어 교육의 문제이다. 영적인 문제이기 전에 글을 쓰고 읽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니, 읽기는 읽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큐티(QT)식 읽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읽으면서 감동이 되는 한 단어나 문구에 매달리는 것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설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쓰기도 안 되고 읽기도 안 되니 본문은 걸어놓고 딴 소리하기 일쑤이고, 출처도 알 수 없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전국 교회 강단을 돌아다닌다. 나는 항상 이 점이 신기했다. 어떻게 수많은 목회자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결국 목회자이든 교인이든 가장 큰 문제는 국어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갹해 보면 그리스도인에게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하나님은 자신을 그리고 진리를 ‘글’이라는 것으로 표현하고 전달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글을 다루는 사람이다. 성경이라는 글을 잘 읽어내고, 해석하고, 삶에 적용하고, 다시 그것을 글이라는 것으로 다듬어서 다음 세대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사라지고 없어지지만, 글은 시대를 뛰어넘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글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 대상이 목회자이든 일반 교인들이든 구분이 없다. 그것이 학문성이 있든 없든, 출판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글을 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대적 위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 2부 ‘어떻게’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 저자의 경험과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1부에서 글을 왜 쓰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만을 언급하지 않는다. 특이한 것은 자서전으로부터 시작해서 일기와 서평, 편지, 칼럼까지 다양한 글쓰기의 종류들을 소개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학자들이나 하는 고상한 놀이가 아니라 일상에서 매일 경험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종이에 연필이나 펜으로 적든지, 아니면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에 키보드를 통해 입력을 하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과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2부에서는 그런 글들을 체계적으로 쓰는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다독하는 것, 꼼꼼하게 메모하는 것, 논리를 세워서 물 흐르듯 개요를 구성하는 것, 그리고 더 훌륭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노력과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저자는 아주 쉬우면서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해 놓았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작성한 글을 어떻게 퇴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저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소개하고 있다. 이 부분은 좀 더 체계적이고 긴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나, 설교나 논문, 어떤 주제에 대해서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이 읽는다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하자. 글쓰는 그리스도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숙명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통해 글쓰는 것을 익히고 배워서 각자의 삶에서 글쓰는 그리스도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