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읽고 또 읽고 그리고 다시 읽어라
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 묵상법
큐티(QT)란 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91년 대입 재수를 하면서 부터이다. 재수라는 어려운 시간을 잘 이겨내라며 선물로 받은 것이 모 출판사에서 나온 ‘생명의 삶’이란 큐티 잡지였다. 그리고 묵상이란 것을 제대로 맛보기 시작한 것은 신학대학에 입학하고 만난 ‘영적 아버지’ 안관현 목사님을 통해서이다. 그때는 아침에 묵상을 끝내지 않으면 아침식사도 하지 않고 심지어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이지 미친 듯이 성경을 묵상하는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광적으로 묵상에 집착을 했다. 이유는 하나이다. 모범적인 주일학교 출신이였지만 정작 하나님을 잘 모른다는 절박함과 목마름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우고 알았지만, 나에게 하나님은 늘 멀리 있고 무서운 분이셨으며, 성경은 그 무서운 하나님이 하사한 법조문(명령문)과 같은 것이기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성경이 달고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정죄감과 부담감만 커져갔고, 그렇게 살 수 없기에 늘 하나님에게 죄송하고 미안했다. 그러다가 접한 묵상은 마른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메마른 나에게 생수와 같았다. 묵상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분을 알아가고, 그 말씀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이 너무 달콤하고 행복했다.
이렇게 묵상을 배우고 시작한 것이 30년이 다 되어간다. 여전히 아침마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말씀묵상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루틴’(routine)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여기 저기에서 큐티 무용론이 제기 되고 있다. 내 주변을 보아도 10년, 20년 큐티를 해 오던 사람들이 이젠 거의 손을 놓고 있는 경우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다시 시작하라고 권면을 하지만 되돌아 오는 대답은 늘 한결 같다. “당신은 목사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지!”, “그렇게 오래 해 왔지만 달라진 것이 없어요.” 나는 그럴 때마다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하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 만나게 된 책이 김기현 목사님의 ‘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 묵상법’이다. 나는 이 책을 무릎을 치며 읽었다. 하나는 나의 고민들과 생각들을 너무 잘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묵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묵상은 본문을 소리 내어 반복해 천천히 읽기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적인 묵상을 네 가지로 소개하는데 모두 ‘읽기’와 연결되는 개념이자 방법이다. 첫째는 ‘소리 내어 읽기’이며, 둘째는 ‘반복해서 읽기’이며, 셋째는 ‘천천히 읽기’이고, 넷째는 그런 읽기의 과정을 통한 ‘듣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서 지속적이면서 반복적으로 (아주 지겹도록) ‘읽기’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묵상’이라고 하면 조용히 무엇인가를 집중해서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어에서 풍기는 뉘앙스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단어가 가지고 있는 정의가 그렇다. 사전을 찾아보면 묵상의 정의는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함’이다. 한문으로 봐도 잠잠할 ‘묵’(默)에 생각 ‘상’(想)이다.
하지만 저자는 조용히 생각만 하지 말고 소리를 내어서 읽으라고 강조한다. 대신 문맥을 고려하면서 읽고, 다양한 번역본으로 읽고,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본문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자의 관점’으로 읽고, 성경 구절을 옮겨 적으며 읽고, 읽은 것을 요약하면서 다시 읽으라고 강조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귀(눈)를 통해서 자기 자신에게 들려지게 되며, 그 들려지는 말씀이 ‘쉐마’의 말씀으로, 성령의 음성으로 읽는 자의 내면에 채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게 되면 사고와 세계관, 일상의 관계까지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적용도 ‘영끌’을 통해서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흘려서 넘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면에 채워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고 흘러가게 된다. 채워지지도 않았는데 무엇인가를 끌어올리려고 하면 안 된다. 먼저 저자가 강조하듯이 읽고 또 읽고 또 읽어서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 넘치게 해야한다.
이 책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시중에 나온 묵상을 소개하는 책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통적인 방법론-소위 귀납적인 방법론을 소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씀묵상이란 것이 잘못하면 자위적이거나 혹은 개인적, 영적으로 흘려서 본문을 잘못 해석하거나 적용할 수 있는 위험성을 늘 가지고 있다. 이것과 관련된 한 가지 사건이 생각난다. 옛날에 아는 지인이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기 위해 비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어느 날 큐티하는 중에 미국 비자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창세기 24장 61절에 나온 ‘비자’(婢子)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비자’가 그 ‘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창세기 26장의 ‘비자’는 ‘몸종’이나 ‘여종’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얼마 안 되어 미국 비자가 나와서 미국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그때는 미국 비자 받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을 때였다).
이런 일들이 많다보니 묵상을 가르치는 책마다 항상 강조하는 것은 ‘관찰’과 ‘해석’과 ‘적용’이라는 귀납법적 방법론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이 방법론을 그렇게 강조하지 않는다. 강조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거나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제대로 잘 읽기만 하면 구지 어렵게 귀납적인 방법론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한다. 반복적으로 소리를 내어 천천히 읽기만 하면 그 안에서 이미 관찰과 해석과 적용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어떤 틀이나 방법론이 아니라 ‘읽기’의 문제이다. ‘읽기’만 잘 되어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묵상도 그렇다. 다양한 방법론들이 개발되고 적용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읽기’가 안 되면 그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면에서 저자는 한국 교회 안에 행해지고 있는 큐티와 묵상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이 책의 매력이자 장점이라고 한다면 저자 개인의 묵상에서 출발하여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 묵상을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실천해온 여정의 결과물을 정리해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묵상을 소개하는 다른 책들과 확실하게 구별되는 차이점이다. 대부분의 책들은 개인의 묵상생활을 다룬다. 거기서 조금 더 확대되면 소그룹 안에서의 나눔에 대해서 다루거나, 목회자를 위해서 묵상과 성경연구, 묵상과 설교를 연결하여 다룬다. 하지만 저자처럼 묵상을 공동체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공동체 전체가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사례와 경험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저자는 단순히 이상적인 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실천하고 적용해 본 내용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이 부분은 한국 교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는 강조하지만 정작 그 말씀을 온 삶과 온 맘으로 묵상하고 살아내는 것이 무엇인지는 배우지 못하였다.
성도들이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분을 알아가며, 그 하나님의 뜻을 온 맘으로 순종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조정하지 않는데, 강단에서 아무리 멋있는 강해 설교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훌륭한 교재와 탁월한 커리큘럼을 가진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너무 과장된 표현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나도 그 모든 것의 기초와 출발점은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예배와 기도, 나눔과 교제로 설명할 수 있는 신앙생활 전체가 말씀을 읽고 질문하고 나누고 삶으로 살아가는 묵상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저 율법적으로 하는 큐티가 아니라 성경을 성경답게 읽고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그 분을 알아가는 풍성함을 경험하는 말씀 묵상하는 삶이 진정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가정 안에서는 자녀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그들이 어릴 때부터 묵상의 기쁨과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아주 좋은 책이자 저자의 목회 여정이 온전히 담긴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 뿐만 아니라 일반 성도들도 읽으시라고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