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틈 사이로 들어가는 첫 걸음

그러나 그 여파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목회와 개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던지게 되는 수많은 질문에 답을 주었던 것이 ‘사회학’이다. 교수들에게도 질문을 던졌지만, 그분들의 대답은 신통치 않았다. 솔직히 목회도 잘 모르고, 그 현장 속에서 목사들이 어떤 치열한 고민들을 하는지 잘 모르는듯 했다(더 솔직히 말하면 자신의 전공 분야만 아는듯 했다).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전통과 관행, 그 전통이라는 것과 관행이라는 것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면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다. “그냥 까라면 까!” 군대도 아닌데 생각과 질문을 많이 하지 말라고 말한다. 오직 명령과 그 명령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만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이 궁금했다. 가족이나 친족 중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많이 없었고, 중직자들 특히 목사는 아예 없었다. 나는 기독교 전통, 신앙의 전통과는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접하는 교회와 목회 환경은 참 신기하고 이상했다. 교회 역사를 공부해도 한국 교회는 참 별난 집단이었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 ‘미국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그 원인을 발견하게 될 때까지 나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목회를 해야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숨통을 열어준 것은 ‘사회학’이다. 거의 대부분의 대답을 신학책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사회학 논문이나 책들에서 찾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나는 여전히 시니컬(cynical, 냉소적)하다.
나를 보면 본성 자체가 매우 비판(이성)적인데, 목회 현장에서 겪은 경험들까지 겹치면서 더 시니컬한 사람이 되었다. 생각 하지마! 질문 하지마! 분석 하지마! 질문하면 할수록 상처를 받고, 분석하면 할수록 출구도 답도 없는 곳이 내가 겪은 한국 교회 목회 현장이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조하지만, 정작 성경대로 하려고 하면 어려움을 당하는 곳이 교회였고 목사들의 세계였다.
그래서 나는 이 세계를 떠날 기회만 보고 있었다. 언제 사직서를 내고 떠날까? 언제 이 놈의 목회를 어떻게 그만둘까? 단지 생계를 위해서라면 참 구차한 삶이었다. 그렇게 내가 겪은 한국 교회는 철옹성이었다. 절대 흔들리지 않고 변화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그냥 천년 만년 흘러갈 것 같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 있듯이, 나도 그렇게 이 세계를 떠날 생각만 하고 있었다.
2020년! 코로나가 그 모든 것을 흔들고 있다. 절대 흔들리거나 균열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되었던 것들이 지금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변화와 도전 앞에 서 있다. 놀라운 것은 그런 상황 속에서 외부인으로서 내부를 보니 새로운 틈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전부터 있었던 틈들은 그 간격이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위기’라고 말한다. 근데 나는 그 벌어진 틈 사이에서 새로운 변화들을 감지하고 있다. 고난과 위기는 언제나 그 시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뒤흔든다. 이때 우리가 해야할 일은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이다. 예측하지 못한 고난을 만날 때 인간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어 있다. 그 질문을 잘 던져야 한다. 현상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근본에 대한 질문,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질문이 우리가 세워놓은 울타리를 넣어 (그 틈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길로 안내해줄 것이다. 마치 벽장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가 존재한 것처럼,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그 놀라운 세계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답은 하나다.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생각은 독서를 통해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최근 제주도도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듯 하다. 모든 약속과 모임이 취소되고 있다. 다시 고립과 단절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답답하다. 하지만 이 시간을 독서로 보내면 좋겠다. 흔들리고 벌어진 틈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질문, 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책들을 찾아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신앙과 목회에 대한, 교회에 대한 뻔한 생각을 잡아 마구 뒤흔드는 책들을 찾아서 진지하게 치열하게 독서를 하면 좋겠다.
그때 우리 안에 생기는 그 질문이, 포스트 코로나 세계에서 우리를 더나아가 교회를 구원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