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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나라가 임하여서 당신의 뜻이 땅 위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을 읽고(서평)

2021년 2월 24일 by joshua@leesangjun.org

#1

2010년도 겨울 선교단체에서 사역할 때 한 달동안 이집트에 체류한 적이 있다. 그때 책으로만 잠시 배웠던 콥틱 정교회를 제대로 접하게 되었고, 그들 안에 짧은 기독교 역사를 가진 한국 목사가 헤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감으로 알게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성 마가교회의 입구에 알렉산드리아 주교들의 명단이 적혀 있는데, 1대 주교가 마가였으며, 20대 주교가 오늘 책의 저자인 아타나시우스였다. 그렇게 보면 한국 기독교는 이백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콥틱 정교회의 역사는 이천 년이 다 되어간다. 

더욱이 이집트가 이슬람화 되면서 그들이 박은 핍박과 순교의 역사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 앞에서 내가 느낀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특히 한국 개신교는 동방보다는 서방 기독교의 역사를 주로 배워왔고, 종교개혁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기 때문에 초기부터 동방 기독교가 어떤 역사적 배경과 문화, 전통 안에서 그들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 왔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들을 판단하고 심지어 정죄까지 한다. 어떤 목사들은 구교가 이단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한다. 구교가 이단이면 신교인 우리는 무엇인가? 

#2

가장 먼저 이 책의 저자인 아타나시우스에 대해서 잠시 살펴봐야할 것이다. 그의 출생년도는 정확하지 않은데 290년대 중후반인 것 같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아주 젊은 나이(30세)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뭐가 대단하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알렉산드리아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대단했다. 예를 들어 초기 기독교 안에 세 가지 학파가 존재했는데, 안디옥 학파와 서방 학파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였다. 더욱이 그리스나 로마에 버금가는 학문과 사상과 종교가 한데 어울러지는 곳이 알렉산드리아였기에, 그런 젊은 나이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다는 것은 신앙과 학문과 실력 면에서 출중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아타나시우스가 남긴 업적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이 책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와 관련된 것인데, 로마 황제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던 아리우스파들과의 논쟁을 통해서 삼위일체 신학을 정립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성경의 정경화 과정, 특히 신약 27권의 목록을 처음 확립한 사람이 아타나시우스였다는 것은 그의 가장 큰 공로 중의 하나이다. 마지막 셋째는 46년 동안 알렉산드리아 주교로 있으면서 아리우스파들의 반대로 다섯 번이나 추방과 도피생활을 하게 되는데(그것을 합치면 17년이다), 그 기간 동안 이집트 사막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인 성 안토니와 교제하게 되고, 그에 대한 책을 집필함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이다. 

#3

이런 저자의 배경을 알고 이 책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를 읽는다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 책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창조와 타락, 2~3장은 하나님의 딜레마와 그 해법인 성육신에 대하여, 4~5장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6~8장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논박함, 마지막 9장은 결론이다. 먼저 아타나시우스는 말씀이 인간이 되신 일과 인간들 가운데 신적으로 나타나신 일에 대하여 변증하기 전에, 말씀을 통한 창조와 인간이 처한 곤경 곧 타락에 대해여 설명한다. 이것이 먼저 설명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말씀이 인간이 되신 이유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타락으로 말미암아 본성을 잃고 죽어서 썩게 되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 문제, 곧 사망의 법이 창조된 인간을 압도함으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딜레마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다. 아타나시우는 이것을 하나님의 딜레마라고 표현한다. 무형이고 썩지 않으며 비물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 세상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인간은 물질적인 존재이기에 땅의 것들을 통해서 전능자를 찾는다. 타락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그 결과 땅의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게 되었다. 하지만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인간에게 오심으로 우상 숭배는 폐지되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고 아타나시우스는 말한다. 

#4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말씀이 인간 가운데 거하신 것이다. 말씀이신 분은 자신을 죽일 수가 없기에, 죽을 수 있는 몸을 취하셔서, 인간을 대신해 자신의 몸을 바치심으로 율법의 정죄는 종식되었고 죽음은 무(無)로 돌아가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런 죽음의 중요한 목적은 몸의 부활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부활이 주는 분명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말씀께서 내주하신 몸이 죽은 것은 본질적으로 연약함 때문이 아니라, 구주의 권능으로 그 몸에서 죽음을 종식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명백히 드러났다.” 그 결과 인간은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어서 아타나시우스는 유대인들의 불신앙과 이방인들의 조롱에 대해서 반박한다. 이들은 모두 말씀이 인간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불신앙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성경 특히 구약의 여러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임을 증명하고 반박한다. 이어서 이방인의 조롱을 다룬다. 이들은 여러 가지 논리적 근거들을 가지고 조물주가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우스꽝스럽게 여긴다. 아타나시우스는 책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여 이 점을 하나 하나 거론하며 길게 논박한다. 특히 성육신의 진리가 가져온 결과(이방인의 삶 가운데)를 강조하면서 그들의 조롱을 반박한다. 

#5

교회사와 교리사를 공부할 때 아리우스, 아타나시우스, 삼위일체 논쟁,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본질, 단성론 등은 초기 교회의 역사와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들이었다. 지금 뒤돌아 보면 잘 이해도 되지않는 내용들과 단어들을 달달 외워가며 공부했고 시험을 치루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논쟁을 했으며, 이것이 지금 우리들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생각하거나 적용점을 모색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냥 신학생이라면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상식 정도로 배우고 끝났다. 그렇게 2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다시 이름도 생소한 아타나시우스의 책을 직접 읽으면서 지난 시간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머리 아픈 신학적 논쟁들을 배경으로 하고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책은 너무도 쉽고 평이했다. 복잡한 신학적 용어들이 난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접한 삼위일체 논쟁에 대한 2, 3차의 자료들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웠고 오히려 마음을 뜨겁게 하는 내용이 많았다. 더욱이 치밀하게 논증하고 당시 사람들의 주장들을 반박하는 글을 통해서 어느 신학자보다 진리에 대한, 말씀으로 오신 주님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머리만 시원하게 하는 책이 아니라 가슴까지도 뜨겁게 해준다. 더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이후 우리가 믿는 진리를 어떻게 변증하고 전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집트에서 오감으로 콥틱 교회를 체험하며, 그들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 부끄러웠고, 그들의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신앙을 지키고 전수하기 위해서 어떤 삶의 발자취를 밟았는지를 보면서 많이 배웠다. 아타나시우스의 책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를 통해서도 내가 얼마나 기독교 역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우리가 가진 기독교 유산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모르고 있었음에 부끄럽고 창피하다. 더불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시대에 복음과 진리를 어떻게 변증하고 전할 것인지를 더 깊이 고민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영성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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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복음자리교회 개처목사 이상준입니다. 제주도에서 10년째 살고 있구요. 하나님 나라와 복음, 제자훈련, 가정교회, 복음전도와  제자훈련과 성령사역 그리고 상담과 치유, 회복 사역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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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위해 인쳐진 남성으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용기와 겸손을 가지고 사람들을 자신과 환경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뜻을 이루는데 각자의 삶을 드리는 세상(공동체)을 함께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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