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운더리
건강한 사회, 건강한 공동체, 건강한 대인 관계는 서로의 바운더리(경계선)을 지키고, 지켜주는데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오지랖(?)이라는 이름으로, 더불어 관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바운더리를 쉽게 허물고 들어온다. 거기에 어떤 이득과 이해관계, 예를 들어 첨예한 정치적인 대립각이 세워지면 그 바운더리를 무참하게 짓밟고 들어와 사회적, 종교적, 인격적 살인을 서슴치 않는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발생하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끝까지 저항하는 것이다. 이 저항은 개인적인 저항도 있겠지만,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저항도 포함된다. 누군가가 함부로 타인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것을 보았을 때 “아니!”라고 말해 주어하고, 이웃들이 손을 잡고 함께 그 바운더리를 지켜주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 상대방에게 바운더리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밀어내야 한다. 강렬하게 저항하고, 안 되면 소리라도 치고, 경찰 신고라도 해서 자신의 바운더리를 자신이 지켜야 한다. 쉽게 허용하면 안 된다. 자신의 바운더리는 자신이 지켜야 한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No”라고 말할 수 있다.
대선이라는 이유로 끔찍한 사회적 인격적 살인을 지켜보고 있다. 정말 끔찍하다. 리더라는 사람들이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의 인생의 바운더리를 마음대로 걷어내고 처참하게 짓밟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너무 화가 난다. 참 무섭다. 너무 악랄하고 잔인하다. 하지만 그냥 지켜만 봐선 안 된다. 누군가 그것에 대해서 소리쳐야 한다. 함부로 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 분도 용기와 힘을 내어서 그만하라고, 멈추라고 소리를 내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상처가 다른 사람에게 감추어지길 바란다면, 자신이 용기를 내어 공개하지 않는한, 어느 누구도 그것을 함부로 꺼내어선 안 된다.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없다. 오히려 돌아서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해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이, 그리고 내가 목사로 있는 교회 공동체가, 가정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길 늘 바란다. 그 시작은 바운더리를 지켜주는 것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부모라도 자식의 바운더리를 함부로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에서는 더욱 더 그래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이고 건강한 사회이다. 하지만 늘 현실은 처참하고 더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