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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과학의 화해’을 읽고

2022년 1월 10일 by joshua@leesangjun.org

낸시 머피 지음 / 김기현, 반성수 옮김 / 죠이북스 

나는 문과 출신으로 ‘수포자’(수학포기자)이며 동시에 ‘과알못’(과학을 알지 못하는)이다. 수학뿐만 아니라 숫자 그 자체가 너무 싫어서 문과를 선택했고, 학력고사 때도 지구과학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리와 상업, 세계사를 선택했다. 그 이후 신학대학을 다니며 오직 신학공부만 10년을 했다. 그 당시엔 ‘인문학’이란 말도 없었고, 과학과 신학은 완전히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일 수 없으며, 함께 논의조차 될 수 있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시대였다. 물론 교회 역사를 통해 중세 대학에서 여러 학문들을 기초 과목으로 배우고 – 거기에 과학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 가장 상위 단계의 학문으로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알고는 있지만, 나는 아쉽게도 학부부터 신학의 길만을 걸었다. 

그러다가 처음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소위 ‘창조 과학’ 때문이었다. ‘과알못’인 나에게 그 분야를 전공한 학자들과 박사들이 나와서 창세기를 과학으로 풀어내는 이야기, 여러 자연의 현상들을 성경과 연결해서 설명해 주는 강의는 나에게 신세계와 같았다. 어쩌면 신학과 성경이란 주제를 가지고 10년 넘게 공부도 하고, 그것을 가지고 매 주마다 설교를 했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들과 질문들, 그러니까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역할을 했기에 순식간에 굉장한 매력을 느끼고 그 주제에 푹 빠지고 말았다. 얼마 동안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너무 매력적이었고, 상당히 지적이었다. 특히 20세기 사람으로 성경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간극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었기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허니문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금방 권태기가 찾아왔다. 전지전능할 것만 같았던 그녀에게서 매우 허술한 부분들이 보였고, 그런 과학의 이론들, 가설들을 가지고 성경을 너무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문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신학의 이론들을 가지고 과학을 온전히 검증할 수 없는 것처럼, 과학의 다양한 가설과 이론을 가지고 신학적인 이론을 세우고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매우 위태롭게 보였고, 근본적으로 성립 자체가 가능한지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나에게 찾아왔다. 이제 그녀에게 이별을 고할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나는 그녀와 계속 별거 중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실 내가 자란 토양에서 신학과 과학은 절대 사랑할 수 없는 가문 출신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특히 현대 과학은 무신론과 진화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움베르토 에코의 책 ‘장미의 이름’에서 나오는 금서와 같다. 웃음의 가치를 부정하고 그것을 악마의 선물이라고 믿었던 한 늙은 수도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권 희극론에 독약을 묻혀서 발생하는 죽음처럼. 한국 개신교에게 현대 과학, 좁게는 진화론은 절대 함부로 읽어서는 안 되고, 회중 가운데 함부로 입에 올려서도 안 되는 악마의 선물이다. 그렇다면 최후의 방법은 서고에 불을 질러서 모든 것을 태우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서로를 향해 복수의 칼만 갈고 있어야 하는가? 이제 용서와 화해를 시도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 의미에서 본서의 제목(신학과 과학의 화해 / Reconciling Thelogy and Science)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화해’라는 말은 ‘갈등과 다툼을 그치고 서로 가지고 있는 나쁜 감정을 푸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차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화해’라는 말에 ‘조화’라는 단어를 덧붙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막힌 담을 헐고 서로에게 쌓여 있는 감정을 털어낼 뿐 아니라 어떻게 신학과 과학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소통하며 교류할 수 있을 것인가를 모색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구성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전체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얇은 책이다. 하지만 절대 쉽게 보면 안 된다. 1장에서는 ‘계층 모델’을 통해서 신학과 과학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2장에서는 신학도 과학적 추론 방법을 사용함으로 과학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3장에서는 과학과 신학의 공통분모를 찾아보는 우주의 미세 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신학과 과학이 서로 보완적인 관계임을 밝히고(여기서 ‘경계성 질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4장에서는 뇌 연구와 성서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연관성를 다루고, 5장에서는 가장 예민한 기독교와 진화론에 대한 문제를 메노나이트의 관점으로 설명한다. 마지막 6장에서는 급진적 종교 개혁파인 메노나이트의 신앙과 신학이 윤리학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며, 다시 그것이 과학과 어떤 연관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다룬다. 

먼저 꿀팁을 하나 제시하자면, 저자의 머리말 보다는 책의 끝부분에 첨가되어 있는 역자의 후기를 먼저 읽는 것이다. 역자 중에 한 분인 김기현 목사가 친절하게 책을 잘 요약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역자의 의견도 함께 포함되어 있으니 그 부분은 주의해서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나 역자의 의견일 뿐이고(충분히 동의가 되고 고려할 부분이긴 하지만), 잘못하면 독자가 책을 읽기도 전에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기에 조심하라는 말이다. 아무튼 얇은 책이라고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과알못’에게는 생소한 단어들과 개념들이 자주 등장하기에 속도를 급하게 낼 수 없는 구간들이 곳곳에 있다. 잘못하면 그 구간에서 책읽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나 주장이 파악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저자가 친절하게도 매 장 끝부분에 요약을 해주기 때문에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두 번째 꿀팁인데,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요약 부분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유익했던 것은, 모든 학문마다 자신들의 고유한 영역이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저자는 그것을 ‘경계성 질문’이라고 부른다). 그때 인접 학문이나 타 학문의 도움을 얻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과 신학도 그런 상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고, 반대로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질문들을 신학이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부분이 있기에 신학과 과학이 과거의 갈등과 대립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화해뿐만 아니라 통합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는 듯하다. 어느 정도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고,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자가 지적했듯이 여전히 합의를 이룰 수 없는 영역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르네상스 이후 여러 과학적 방법(이성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도출해 낸 여러 가설과 이론을 가지고 신학적인 체계를 세워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대 과학과 많이 유사하다 하더라도, 결국 신학의 끝은 미지의 하나님을 지향할 수 밖에 없으며, 그 분은 어떤 과학적 사고와 가설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더불어 이성과 경험을 뛰어넘는 계시와 신비의 영역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존재해야 진정한 종교일찐데, 그것을 과학이 어느 선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각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며 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 안에 여전히 곳곳에 지뢰가 존재하지만, 저자와 같이 한 발씩 내딛는 용기와 도전은 칭찬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언제까지 교회가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루어 놓은 결과물을 거부할 수 있을까? 세상은 코로나로 인해 4차 산업혁명에서 논의되고 있는 수많은 기술들이 빠른 속도로 우리의 삶에 파고들고 있다. 교회가 그런 세상의 변화를 어느 때까지 밀어내면서 현실의 세계를 부정할 수 있을까? 이젠 화해를 시도할 때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런 책이 필요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읽어야 한다. 특히 신학만 공부한 나는 같은 ‘과알못’ 목사들이 모르는 개념들과 단어들을 찾아가면서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의 수고와 노력이 없이는 미래 목회의 청사진을 그리기 어려울 것이다.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책이 출판되어 감사하다. 누구보다 번역에 수고해 주신 김기현 사부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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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복음자리교회 개처목사 이상준입니다. 제주도에서 10년째 살고 있구요. 하나님 나라와 복음, 제자훈련, 가정교회, 복음전도와  제자훈련과 성령사역 그리고 상담과 치유, 회복 사역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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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위해 인쳐진 남성으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용기와 겸손을 가지고 사람들을 자신과 환경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뜻을 이루는데 각자의 삶을 드리는 세상(공동체)을 함께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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