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직업이 아니다?

정기 지방회를 마치며 몇 가지 추억이 떠올랐다. 전도사 승인(그때는 시취라고 했는데)이나 목사 안수 후보자가 되어 지방회 어른 목사님들 앞에서 (인사부) 면접을 볼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질문들이 있었다. “어떻게 사명을 받았냐?”, “부목사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버지는 뭐하시냐?(혹은 누구시냐?)” [이런 질문이 그때는 몰랐으나 나중에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음]
질문과 대답이 몇 차례 오고가면 한 분이 긴 덕담을 늘어놓으신다. 한 마디로 목사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 요지였다. 요즘 젊은 것들은 사명감이 떨어져서 자꾸 목사를 직업처럼 말하고 생각하는데, 절대 목사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안수 받고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개인적으로 내린 한 가지 명확한 결론은 “목사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 분들의 주장처럼 목사가 직업이 아니라면, 적어도 교단에서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는 해결해줘야 한다. 요즘 말로 하면 기본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회 성장은 곧 사례비와 정확히 비례된다. 솔직히 교회 성장이 중요한 이유는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명은 2차적인 문제이다.
그때는 한국 사회가 다같이 가난한 때였다. 지금은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이 더 고통스럽다. 특히 최저생계비도 해결이 안 되는 목회자들의 가난은 어쩌면 선배들이 경험한 가난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차라리 목사가 직업이라고 말하고, 현실적인 대안이나 방법들을 찾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사회생활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이십대 젊은이들에게 잘못된 개념을 세뇌 시켰다면, 그에 상응하는 현실적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조직이나 방법들을 모색해 놓았어야 했다. 자기들은 외적 성장을 통해 물질적 풍요를 다 누려놓고선, 목사는 직업이 아니라는 이상한 신화를 후배들에게 심어주고, 앞으로 닥칠 현실적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물론 그 분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현실에서 선택은 각자의 몫이고, 그것에 대한 책임도 각자의 몫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개인의 선택과 몫도 있지만, 한국교회 안에 존재하는 어떤 토양과 문화, 제도적인 문제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여전히 이중직이 되느니 안되느니 논란이 있다는 것 자체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어느 목사님은 여전히 목사가 구약의 레위인이라고 주장하신다. 그들에게 기업(땅)이 주어지지 않았고, 하나님만이 그들의 기업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구약을 다시 보면 그런 레위인이 열두 지파 안에 흩어져 살 수 있도록 지정된 성읍들이 있었고, 그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십일조가 있었다. 이런 부분들은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목사를 레위지파에 빚대어 말하면서 세속적인 직업을 가지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것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만 (외적으로) 성장 시켜서 십일조와 헌금을 많이 거두면 된다. 그래서 현실 목회는 점점 그런 쪽으로 기형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그 결과 요즘 목사가 무당과 비교를 당하고 있다. 분명 건강하게 목회를 해서 건강한 교회 성장을 이룬 분들도 적지않게 존재하지만, 더 많은 경우가 세속적이고 미신적인 목회를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하나다. 현실에 발을 내딛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목사는 직업이 아니다” 라고 말하며서, 뒤로는 누구보다 세속적이고 미신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성장시켜야 하고, 어떤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야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현실에 발을 내디고 현실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처절한 현실은 가르치지 않고, 멋진 거대담론으로 가득찬 신화만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자신들이 먼저 겪은 그 현실의 문제들을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회와 지방회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이 이 점이다. 도장을 이렇게 찍느냐 저렇게 찍느냐가 중요한 화두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예측하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출구 전략을 고민하는 리더가 거의 전무하다. 교단 총무나 부총회장 자리를 놓고 머리 터지게 싸우지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리더는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