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을 발견하다! (1)

가정교회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곳은 이천 년대 초반 방글라데시였다. 그때 필자의 소망은 방글라데시 선교사가 되어 무슬림 지역에서 복음전도와 교회 개척 사역을 하는 것이었다. 무슬림 지역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눈에 보이는 예배당을 갖거나 건물에 십자가를 세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또한 선교사 혹은 목사라는 이름으로 목회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한 마디로 기존의 선교 방식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슬림 지역 선교사들이 시도하는 것이 비지니스나 교육 사역이다. 물론 90년대 후반에는 비지니스 모델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교육(학교)이나 보육, 의료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럼 무슬림 지역에서 어떻게 복음 전도를 하고 교회 개척 사역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필자의 질문이었고 고민이었다. 그때 방글라데시 시골 마음에서 가정교회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미국 남침례교단 선교사들이 관계 전도로 복음을 전하고,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가정교회(House Church)을 개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필자에게 가정교회란 개념은 매우 생소했다. 어릴 때부터 전통적인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자랐으며, 전통적인 신학 교육과 목회 훈련을 받았기에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 개척을 하고, 관계 중심으로 전도를 하며, 건물 없이 가정교회를 세워 간다는 것이 너무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고 운명처럼 끌렸다. 왜 가정교회에 그런 매력을 느꼈는지 생각해 보면 개인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이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요인이란 기존 신앙생활에 여러 가지로 질문들이 많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열심히 하라는 일방적인 명령뿐이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고 그냥 시키는대로 열심히 하면 된다는 대답들뿐이었다. 어릴 때는 그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성장하면 할수록 그런 식의 신앙생활에 많은 회의와 한계를 느꼈다. 환경적인 요인은 신학도로 목회 사역을 배우고 경험하면서 느꼈던 절망감 때문일 것이다. 굳어질대로 굳어져 있는 사역자들, 신학교에서 배운 성경과 목회 현장의 커다란 이질감, 부르심을 상실한채 종교화 되고 조직화 된 교회의 모습들.

그래서 인지 몰라도 지역교회에서 목회를 한다는 것에 소망을 가질 수 없었다. 필자는 가능하다면 지역교회 목회보다 선교사가 되든지 아니면 선교단체에서 사역을 하고 싶었다. 정말 교회라는 곳은 블랙홀 처럼 느껴졌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배웠지만, 현장에서 경험한 교회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셨던 (지나가길 원셨던) 그 잔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에서 접한 그 가정교회는 필자에게는 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지역교회가 저렇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고 커다란 도전이었다. 어쩌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세계가 열린듯 했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만 해도 교회는 건물이었고, 신앙생활이란 그 건물 안에서 행해지는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한국교회에 셀교회(Cell Church)가 막 소개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가정교회와 관련된 서적들이 번역되기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두 권이 있다. 첫째는 데이비드 게리슨이 쓴 ‘하나님의 교회개척 배가운동’(요단출판사)이었고, 둘째는 볼프강 짐존이 쓴 ‘가정교회-침투적 교회 개척론’(국제제자훈련원)이었다. 두 책 모두 신학적인 이론을 다룬 책이라기 보다는 선교지 혹은 사역지에서 어떻게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교회 개척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런 교회개척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리서치하고 그런 운동들 안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특징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교회론의 패러다임 전환과 목회 현장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 질문에 대안을 찾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 중에 한 가지만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복음전도와 제자훈련의 통합 모델을 가정교회 안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90년대 초반부터 전도폭발 사역을 오래동안 해왔고(대학원에서 전도학을 공부했다), 제자훈련 사역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체계적인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사역을 배우고 싶어서 네비게이토, C.C.C, IVF, YWAM 등 유명하다는 선교단체를 좇아 다니면서 배웠다. 그것을 통해 평생 복음전도와 제자훈련 사역만을 하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사역을 하면 할수록 연계성이 너무 부족하고, 공동체가 없는 훈련의 한계도 많이 알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따로 국밥처럼 서로 별개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이나 초대교회를 보면 그것은 모두 유기적인 연결되어 있었고,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이 건강하게 세워졌다.

이런 한계를 나름 극복한 교회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대부분이 대형교회들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기적인 연결은 아니었고 조직적인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었다.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그런 조직과 시스템을 갖출 수 밖에 없다. 대형교회들은 여러 다양한 세미나를 통해 그것이 마치 유기적인 교회인 것처럼 소개했지만 그것은 성경이 ‘몸’으로 비유하는 유기적인 관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복음전도와 제자훈련이 통합되는 유기적인 관계/공동체란 어떤 것일까? 필자는 그 모델을 가정교회 안에서 발견하였다. 자세한 논의는 다음에 하겠지만, 간단히 말하지면 조직이 아니라 관계이며,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와 사람이 작동하는 환경이 가정(가족 혹은 확대된 가족)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예수님의 삶과 사역 그리고 초대교회를 보면 대부분이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 관계와 사람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고, 그 관계를 통해 사람들을 양육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세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초대교회는 전도부나 새가족부, 양육반, 제자훈련반과 같은 조직이 없었지만, 가정과 관계 안에서 복음전도와 제자훈련 사역들이 통합적이며 유기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가정교회는 예배와 교제와 선교까지도 유기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건물과 조직, 프로그램으로 대체하고 있을 뿐이고, 보이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그렇게 존재하고 있어서 그거시 정상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짜 원형은 가정교회가 더 가깝다.

아무튼 가정교회를 발견한 이후로 여러 가지 실마리가 풀렸고,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신약성경이 새롭게 읽혀지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가정교회가 유일한 교회이며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주는 마술봉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성경적인 원형에 가깝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가정교회가 신약성경이 말씀하는 교회의 원형에 가깝다고 본다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믄 다음 글에 더 자세히 밝히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