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
※ 방선기 목사(직장사역연구소 소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몇 년 전에 가정교회를 직접 개척하였다)
지난 2,000년도에 처음 가정교회를 시작할 때 가정교회에 대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까지는 어느 이단으로 정죄된 교파에서 가정교회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오해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오해는 사라진 것 같지만 다른 종류의 혼동이 있다. 기존 교회 안에 있는 셀 교회를 가정교회로 부르는 교회들이 있기 때문에 그 가정교회와 혼동하기도 한다. 이렇듯 아직도 가정교회와 관련해서 오해와 혼동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가정교회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 종종 내게 가정교회에 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직접 우리 가정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아직 가정교회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낯설다. 가정교회를 그저 작은 교회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가정교회는 기존교회들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기존교회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면이 있다. 가정교회는 단순히 작은 교회가 아니다. 가정교회는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를 이 시대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려는 흐름들 중에 하나이다. 기존교회가 많이 있는 지역에서는 이 교회가 좀 색다른 ‘대안교회’가 되겠지만 기존교회와 같은 형태의 교회를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지역에서는 어찌 보면 유일한 교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가정교회들처럼 모든 교회가 가정교회가 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가정교회를 교회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공부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
1. 가정교회의 정의
가정교회는 소규모의 성도들이 가정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작은 교회다. 앞서 말했듯이 기존교회 안에서 소그룹 구역 조직을 교회의 형태로 만들어서 가정교회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가정교회는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가정교회는 가정단위로 이루어진 교회를 의미한다. 기존 교회는 한 가정에 모이기 힘들만큼 커지면 새로운 건물을 얻어서 교회를 확장하지만 가정교회는 분가를 시켜서 교회를 확산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교회는 기존 교회와 다른 면이 있다.
2. 가정교회의 특징
가정교회는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가정교회의 기원은 초대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는 중에 자기와 동역했던 브리스길리와 아굴라의 집에 모인 교회에게 문안하라고 했다(고전16:19). 그 부부의 집은 교회 공동체의 모임 장소였다. 그들의 가정교회 외에도 다른 예들이 있는데 마리아의 집(행12:12), 루디아의 집(행16:40) 눔바의 집(골4:15), 아킵보의 집(몬1:2) 등이 그것이다.
그 당시의 집이 갖는 의미가 지금과는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배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사거나 빌리지 않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성경이 그 사례를 보여준다. 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의 모습은 ‘집에 있는 교회” 즉 가정교회였다. 지금처럼 교회를 위해서 예배당이나 별도의 건물이 있는 교회에 익숙해서 그래야만 정상적인 교회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생활의 공간인 가정에서 모이더라도 교회의 역할을 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교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정교회는 기존교회에 비해 훨씬 상호 관계적이다.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성도들 간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 구역조직이나 셀교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는 소규모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관계가 친밀하다. 특히 예배의 형태에서 차이를 더 느낀다. 기존의 교회에서 예배는 인도하는 분이 앞에 있고 나머지 청중들이 관람하는 형태이다. 서로 간에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그러나 가정교회는 공간이나 형태상 관계적일 수 밖에 없다. 기존교회에서의 종교적인 분위기는 맛볼 수 없지만 하나 됨을 느끼며 예배드릴 수 있다. 그리고 소규모이기 때문에 서로의 생활이 비교적 투명하다. 교회 안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외식이나 위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적다.
가정교회는 현재 우리의 사회적인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지금까지 교회는 별도의 예배공간을 필요로 했으므로 그 공간을 비리거나 사야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땅값이 비싼 지역에는 교회를 시작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무리해서 건물을 사거나 빌린다고 해도 그것을 유지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 재정적으로 풍부한 교회는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교회는 재정적인 이유로 교회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
유지를 해도 작은 교회의 경우는 헌금의 많은 부분을 부동산 유지비에 사용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예배드리는 대안은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다. 적어도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길 때까지 만이라도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정교회 는 효율적이다. 기존교회에는 너무 할 일이 많다. 교회 건물을 유지하는데 돈과 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정적인 필요에 너무 많은 돈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행사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나 협조가 필요하다. 기존교회의 열심 있는 성도들은 너무 바빠서 정작 자신의 경건생활을 하지 못하는 마르다와 같은 신앙인이 되기 쉽다. 그러나 가정교회는 교회에서 맡겨진 본질적인 사역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돈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가정 교회는 선교전략에 필수적이다. 선교지들 중에는 복음을 직접 전하기 어렵거나 기존의 예배당을 지어서 교회개척을 하기 어려운 곳들이 있다. 예배당을 지을 수 없다고 교회를 개척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반기독교 정서가 있는 선교지에서 기독교의 상징인 예배당을 지어 놓고 선굘글 하기보다는 가정에서의 친밀한 모임으로 교회를 시작한다면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교회를 개척할 수 있다. 모슬렘 지역처럼 반기독교 정서가 깔려있는 곳에서는 가정교회는 대안적인 교회라기보다는 아주 전략적으로 필수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정교회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안교회이다. 마치 홈스쿨이나 대안학교들이 기존의 학교에 대안으로 나오듯이 가정교회가 기존 교회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정교회들이 갖는 문제점도 많이 있다.
3. 가정교회의 약점과 한계
현 재 구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정교회 중에는 기존 교회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교회들이 있다. 그들은 초대교회들이 가정교회였던 사실을 강조한 나머지 그 이후에 예배당 건물을 짓고 대형화되는 교회를 배도한 교회로 취급한다. 가정교회가 가장 순수한 교회로 여기며 작은 교회를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형태의 차이로 부정할 수는 없다. 기존교회가 가정교회를 부정한다면 그것도 잘못이지만 가정교회가 기존교회를 부정하는 것 역시 잘못이다.
가정교회는 작은 교회의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작은 교회를 고집하는 것은 교회의 참 모습이 아니다.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지만 작은 교회는 아니었다. 가정교회의 지체들의 친밀한 교제에 빠져서 교회의 사명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가정교회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똑같이 감당해야 한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전도이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는 전도에 헌신해야 한다. 가정교회였던 초대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다.
다만 전도의 전략이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정으로 찾아가서 전도하고 가능하면 그 가정을 또 하나의 교회로 시작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전도를 통해서 교회의 성장을 기대한다면 가정교회는 교회의 확산을 기대한다고 할 수 있다. 전도를 통해서 교회를 계속 자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이론적으로 그럴듯한 교회를 주장해도 온전한 교회가 되지 못한다.
가정교회는 기존교회에 비해 약점도 많이 있다. 가장 어려움을 겪는 문제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이다. 가정교회는 기존교회에 있는 주일학교가 없다. 그 대신 자녀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함께 삶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을 기대한다. 예배 모임에서 아이들을 위해서 성경을 가르치는 하지만 가정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의 신앙교육에 책임을 지도록 한다. 사실 성경적으로 보면 아이들의 신앙교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가정교회에 서 기존교회와 같은 다양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없다. 그 대신 공동체의 삶을 통해서 서로 가르치며 서로 배운다. 그렇지만 역시 부족한 부분이 있으므로 다른 교회나 단체들이 제공하는 유익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권한다. 청소년들의 경우 같은 또래들과 교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정교회를 떠나 기존교회에서 양육 받도록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는 배타적이어서는 안 된다. 기존교회는 물론 다양한 단체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간다.
가정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기존교회처럼 교회로부터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는 목회자들이 이끌어가기가 어렵다. 교회가 작기 때문에 목회자들에게 충분하게 재정을 공급해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는 다른 곳에서 재정의 공급을 받는 목회자나 자비량 목화자들이 할 수 있으며 평신도들 가운데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들이 이끌어 가야만 한다. 이것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가정교회는 앞으로 선교의 전략의 관점에서는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교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정교회에 대해서 쉽게 단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모슬렘 선교를 전문으로 하는 프런티어 미션에서 교회개척을 위해서 가정교회가 필수적인 것을 인식하고 선교사들에게 가정교회에 관한 준비를 시킨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동감하게 되었다. 어디서드지 교회개척이 예배당 건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면 가정교회는 그 대안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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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정교회인가?
1. 가정교회란 무엇인가?
우리는 가정교회를 ‘그리스도의 권위와 성령님의 인도 아래 교회가 되기를 하나님과 서로에게 함께 언약한 사람들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만나기에 충분한 소그룹’이라고 정의한다. 누군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모이는 것이 교회일 수 있는지를 물을 수 있따. 그런 그룹은 예배하고, 배우고, 나누고, 서로를 제자훈련하고, 함께 선교하고, 함께 결정하고, 그리스도의 권위와 리더십에 함께 순종할 장소를 제공할 수 있는가? 첫 세기의 교회를 살펴보면 이러한 물음에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신약이 쓰여질 당시, 만일 당신이 가장 가까운 교회의 위치를 물었더라면, 그들은 어떤 사람의 집 방향을 가리켰을 것이다. 하나의 가족은 로마제국에서 근본적인 사회 단위였다. 이런 가족은 일반적으로 한 연장자의 권위 아래 있는 다수의 가족들로 구성되었다. 이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상호작용은 친밀하고 의미 있었다. 신약은 이런 가족들을 설명하면서 가족들 전체가 동시에 침례(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한다. 신약에서, 교회를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만났다. 오늘날, ‘가정교회’와 ‘성전(sancturay)교회’-이하 건물 중심의 교회- 사이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만나는 장소이다. 어느 쪽이든 교회에 관련된 우리 주님의 명령을 성취할 수는 있다.
2. 가정교회는 무엇과 같은가?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설명한다. 가정교회는 가족과 같다. 교회는 가족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가족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가져야 한다. 교회 가족은 집안 식구의 연장선 상에 있어야 한다. 우리 집안 식구 가운데서와 동일한 의사소통, 헌신, 친밀감, 성숙, 참여, 돌봄, 나눔과 책임의 역동성이 교회 가족의 관계 속으로 넘쳐 흐른다. 만약 우리 집안 식구의 관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우리 교회 가족도 온전히 기능하지 못할 것이다. 가정교회가 가족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알고 고쳐나가는 것은 더 쉽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가장 큰 도전 중에 하나는 구성원들간의 훌륭한 의사소통이다. 가정교회는 우리에게 의사소통을 하도록 요구한다.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과 맞은 편에 앉아 있다면 그로부터 자신을 숨기기란 쉽지 않다. 만약 논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앙심과 분노를 품는 본성이 있다. 큰 예배당에서는 다른 사람을 볼 수 없는 건물 구석으로 숨기가 쉽다. 가정교회에서는 관계가 눈에 띄게 드러나서 불화는 빠르게 해결 되어야만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의 가족이 사랑하고, 보살피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에베소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엡 4:15~16).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온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몸에 갖추어져 있는 각 마디를 통하여 연결되고 결합됩니다. 각 지체가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 안에서 몸이 건설됩니다.’ 가정교회에서 멤버들 간의 올바른 의사소통은 사랑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의 관계를 투영한다.
3. 규모가 공동체의 질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규모가 실질적인 문제이다. 교회를 단계적이고, 개인적이고, 친밀하고, 헌신적이어야 한다. 또한 가족과 같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 우리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가족 용어를 사용한다(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아들, 딸, 그리고 자녀). 규모는 그룹의 관계에 뚜렷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 과학자들은 더 작은 그룹들이 더 많은 참여, 더 밀접한 상호작용, 더 많은 책임의식, 더 친밀한 관계를 촉진 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은 공동체 하나를 만들 수 있는 12명 정도와 함께 일하셨다. 영적인 성장은 친밀한 환경에서 가장 잘 일어난다. 이것은 규모에 의존하는 상호책임이 필요하다.
만약 한 멤버가 어떤 이유로 결석하거나 탈퇴하면, 교회가 그 사람의 부재를 느낀다. 이것은 건강한 것이다. 모든 멤버가 중요하다. 각자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모두는 서로에게 사역할 책임이 있다. 이런 류의 헌신으로 교회는 사랑으로 함께 밀착된다. 만일 이런 헌신이 자탱되지 않는다면, 가정교회는 사라지게 된다. 그 그룹이 배타적이고 자기만족적이거나 냉담해지면 성장은 멈춘다. 그 그룹은 시작 직후부터 밖으로 뻗어나가도록 반드시 격려 받아야만 한다. 이런 기초가 없이, 우리가 짓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것이 건물 중심의 교회든 가정교회든 결국 정체될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교회에서 멤버들은 새로운 가정교회를 이루기 위해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언약서에 적는다.
4. 가정교회는 어떻게 사역하는가?
가정교회의 멤버들은 상호 목양하는 책임을 진다. 가정교회는 수고하는 사람, 상처 받은 사람, 성숙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제공한다. 멤버들은 기꺼이 권면을 주고 받으려고 해야만 한다. 개개인은 최악의 시기일 때에 조차 다른 사람들이 여전히 그 지체를 사랑하고 보살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이런 관계는 갈등으로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개개인은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지체에게 신실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때 가정교회는 가족 멤버 개개인을 지지하기로 헌신한 가족이 된다.
가정교회가 자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쉽게 의미 있는 관계들을 발전시킨다. 이것은 개개인의 모든 허드렛일에 참여하도록 격려한다. 한 식구들 중에 방관자(관찰자)은 있을 수 없다. 가정교회에서 멤버들은 자시를 따르고 받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능동적으로 교회 사역에 참여한다. 가정에 있는 교회는 높은 수준의 헌신을 촉진한다. 참여자들은 의미 있게 관련 되든지 아니면 재빨리 떨어져 나간다. 가정교회는 상호 헌신을 촉진한다. 사람들은 일상 문제와 관련해 서로에게 사역한다. 가족 구성원들은 성경이 자신들의 일상의 관심사에 관해 어떻게 말하는지를 살펴본다. 우리가 가족의 환경을 돌보려고 실제 삶의 상황들을 다룰 때 성경은 우리에게 권위를 가진다. 가정교회 모임은 우리가 하루의 문제들을 나누면서 그 해결책을 찾는 저녁식사 테이블 주변에 모이는 가족 ‘회합’ 같아 보인다.
5. 가정교회가 어떻게 개인의 성장을 격려하는가?
한 그룹이 가정에서 만날 만큼 충분히 작을 때 가족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오늘날 문화에서 가족 단위는 이쪽 저쪽으로 공격받고 있다. 우리는 집안 가족들과 교회 가족들에 관한 성경적 가치들로 되돌아 가야 한다. 가정교회는 가족 관계를 경험하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신약시대의 가정교회들은 신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각 멤버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연관되도록 격려 받았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신앙을 반대했던 첫 세기의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을 전세계를 뒤집어 엎은 사람들이라고 묘사했다.
가정교회는 영적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유일한 기회를 제공한다. 모든 멤버의 사역을 지향한다. 각 멤버는 사역자이다. 소그룹들은 교회 가족 전체가 사역하도록 함으로 개인의 성장과 사역을 통합한다. 모든 남자, 여자, 자녀는 전체적으로 그 그룹에 책임이 있다. 그밖에 단순한 출석자들일지 모를 멤버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well being)에 책임이 있다. 가정교회가 모든 사람들의 덕을 세우기 위한 은사들을 가진 ‘제사장들’의 모임 즉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
6. 당신은 가정교회를 위한 리더들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가정교회에서는 리더를 알아보고 개발 하기가 쉽다. 리더들은 은사를 가진 다른 사람들을 알아보고 격려한다. 가정교회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사람들의 리더십 능력을 손쉽게 알아보고, 훈련을 받고, 책임이 주어진다. 다른 가정교회의 리더들과 교회 개척자들에 의한 지속적인 훈련은 능력 있는 리더들의 지속적인 개발을 보장한다.
7. 헌금이 어떻게 사용되어지는가?
가정교회는 비싼 건물을 구매하거나 렌트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엄청난 재정적 부담이 제거된다. 이것은 가난한 신자들의 구제와 교회 개척 사역을 위한 재원으로 더 많이 사용하게 한다. 가정교회들의 군집 하나는 적어도 한 조정자(지역 목자, pastor-at-large)를 지원할 필요를 느끼게 될지 모른다. 이것은 그 교회들이 협력할 때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다.
8. 가정교회운동이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가?
가정교회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빌리 그래엄은 ‘다양한 교회 컨퍼런스와 리트릿에서 세계 많은 지역 가운데 가정교회가 증가하고 있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찰자들은 중국에서 교회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주모간다. 중국인들은 주로 가정교회에서 만난다. 중국교회 연구센터의 조나단 차오(Jonathan Chao)는 이런 가정교회 형태로 2억 5천의 신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다른 많은 나라에도 수천 개의 작은 가정교회들이 있다. 크리스챤 투데이(Christian Today)가 가정에서 모이는 신자들의 아주 작은 모임들이 북한에 있다는 보고서들을 인용했다. 어떤 추정치에 의하면 가정교회들의 수를 1,000개 이상으로 잡는다. 베트남에서 나온 보고서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대부분 소그룹 형태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멕시코 시티에서 비전 라틴아메리카 복음전도협회의 지도자로 있는 갈로 바스쿠에즈(Galo Vasquez)는 스스로 기능하는 가정교회들이 A.D. 2000년까지 10,000개가 세워지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정교회는 유럽에서, 특히 영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익투스 교회(Ichthus Fellowship)는 런던에 있는 작은 가정교회로 이루어진 큰 교회이다. 바울의 공동체 사상의 저자인 로버트 뱅크스(Robert Banks)는 호주의 캔버라와 시드니에서 가정교회들이 세워지고 발전되는 것을 보았다.
가정교회는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형성되고 있다. 가정교회의 저자인 델 비키(Del Birkey)는 십 년 넘게 일리노이 주에서 가정교회에 관여하고 있다. 가정교회 세우기의 저자인 로이스 바렛(Lois Barrett)은 펜실베니아와 켄사스 주에서 가정교회에 관여해 왔다. 메릴랜드 주, 볼티오어에 잇는 그레이스 교회(Grace Fellowship Church)는 ‘가정교회가 우리 교회의 배경이다. 우리 교회의 일부가 되는 것은 가정 그룹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세레티피티 소그룹 훈련 지침서는 성장의 수단으로 가정 소그룹을 채택한 교회들을 리스트화 했다.
우리는 가정교회가 온 세상과 여구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교회의 확장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작은 가정교회들을 통해서, 첫 세기에 지역사회들로 퍼져나갔던 동일한 방식으로 놀라운 그리스도를 위해 지역사회를 향해 퍼져나갈 수 있다. 우리가 전세계 수백만의 다른 신자들과 손에 손을 잡고 걷는 것처럼 이처럼 흥미로운 모험에 당신이 우리와 합류하도록 초대한다.